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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고려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김사렴(金士廉)의 증손자이다. 『우암집』의 저자 화산군 김주(金澍)는 김환의 현손이다. 증조부 김사렴의 “내가 죽거든 깊은 산중에 파묻고 봉분도 하지 말고 표석도 세우지 말라. 그리고 자손 중에서 고려조에 이미 벼슬한 사람은 다시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유훈(遺訓)에 따라 상대(上代)의 고향인 오근(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출사(出仕)하기가 미안하여 여주 땅으로 이거(移居)하였다. 이후 관직에 진출해서 사정(司正)을 지내다가 1442년(세종 24) 친시(親試)에 급제하고 한림(翰林) 주서(注書)를 거쳐 승문원(承文院) 판교(判校)에 이르렀다. 1450년(문종 원년) 5월,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사은사(謝恩使) 병조참판 조서안(趙瑞安), 형조참판 안완경(安完慶) 등과 함께 명(明) 황제가 내려준 세자(世子)의 면복(冕服)과 칙서(勅書)를 가지고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다. 그 공으로 전지(田地) 10결(結)을 하사(下賜)받았다. 1451년(문종 1) 보령현감(保寧縣監)을 지내다가 사직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의 임무란 농사에 힘쓰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는 데 불과할 따름이니 네가 가서 공경히 행하라” 하였다. 1469년(예종 1)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정사를 볼 때, 구치관(具致寬)이 아뢰기를 “이문(吏文)과 한어(漢語)를 밝게 아는 자는 지금 단지 김환 등 몇 사람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없으면 사대문서(事大文書)를 아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묘는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 참고문헌 : 『호음집(湖陰集)』, 『우암집(寓菴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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