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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성존(聖存), 호는 사영(思潁)이고, 판돈녕부사 김영근의 아들이나 영의정 김좌근에게 입양되었다. 1847년(헌종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복시정·대사성·이조참의·이조참판·대사헌,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853년에 예조판서·한성판윤을 지냈다. 철종 때 안동 김씨 세도하에서 이조판서 2회, 호조판서 5회를 역임하다가 흥선대원군이 등장하면서 잠시 한직으로 밀려 났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기 전부터 그와 두터운 교분 관계를 쌓아온 덕에 1865년(고종 2) 병조판서·좌찬성, 1866년 공조판서·예조판서, 1867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한편 1856년(철종 7) 4월 12일 여주읍내에 큰 불이 일어나 가옥 수백 채가 불에 탔는데 김병기가 그의 아버지 김영근과 함께 수백 석의 식량과 돈을 풀어 백성들을 구휼한 바 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한 공덕비가 영월루(迎月樓) 공원에 세워져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驪州邑誌)』(장서각)의 명환(名宦)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철종실록』, 『고종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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