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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진

조선 성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희철(希哲)이며 호는 존양재(存養齋) 또는 약천(藥川)이다. 연담(蓮潭) 곽예(郭預)의 7세손이자 단산군수(端山郡守)를 지낸 곽음(郭廕, 1398~1474)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라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살이 3년을 지냈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6년(세조 2) 교도(敎導)를 제수받았으나 관직에는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다. 생육신의 한 명이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나이 차를 뛰어 넘어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동륙산인(東陸散人)이라 자칭(自稱)하였다. 청우(靑牛)를 타고 국내의 명승지를 유람하다가 원주 간매촌(看梅村, 지금의 강천면 간매리)에 이르러 소가 일어나지 않자, 그 자리에 집과 누각을 지은 후 ‘존양(存養)’이라 이름하고 제영(題詠)하니 당시의 문인들이 이를 듣고 많이 효창(效唱)하였다고 전한다. 묘는 강천면 간매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청주곽씨대동보』(청주곽씨대종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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