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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근

신륵사(神勒寺)가 그 이름에 품격을 더 할 수 있는 까닭은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낸 나옹화상과의 인연 때문일 것이다. 나옹(懶翁)의 법명은 혜근(惠勤, 慧勤)이자 성은 아(牙)씨이고 속명(俗名)은 원혜(元惠)이며 호는 나옹 또는 강월헌(江月軒)이다. 아버지는 선관서령(膳官署令, 궁중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을 지낸 서구(瑞具)이며 어머니는 정(鄭)씨였다. 영해부(寧海府, 지금의 경북 영덕) 사람으로 어머니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으로 드는 것을 본 후에 그를 낳았다.

자라면서 근기(根機)가 매우 뛰어나 출가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20세가 되던 해에 다정했던 친구의 죽음을 본 후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了然)스님에게서 머리를 깎았다. 4년 뒤 양주 회암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원나라 연경에 가서 지공(指空)화상의 법을 이어받아 109대 조사가 되고 평산 처림(平山 處林)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아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고려로 돌아온 나옹스님은 회암사 터가 인도의 나란다사와 비슷하니 그에 필적하는 대가람을 건립하고 싶다던 스승 지공스님의 소원대로 회암사 중창 불사를 일으켰다. 1376년(우왕 2)에 260여 칸의 대규모 사원이 완성되자 4월 초파일에 낙성회를 가졌는데 서울과 지방의 선비와 아낙네들이 밤낮으로 왕래하여 생업을 폐지하기에 이르자 시기하는 무리들이 이를 금지시키려고 왕명을 빌어 스님을 경상도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추방하였다. 스님은 영원사로 가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그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신륵사에서 5월 15일 열반하게 된다. 세수(歲首)가 56세, 법랍(法臘)이 37하(夏)였다.

열반에 드는 순간에 오색의 채색구름이 봉미산(鳳尾山) 마루를 뒤덮었으며 화장하고 나서 유골을 씻으려 하자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사방 수백 보를 적셨다. 사리를 수습해보니 155알이었고 기도하자 다시 558알로 분신하였다고 한다. 장례의식이 끝난 뒤로 8일 동안이나 신령스런 광채가 주변을 비추었으며 회암사로 유골을 옮길 때에도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배를 쉽게 띄울 수 있게 하는 등 이적(異蹟)이 끊이지 않았다.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 참고문헌 :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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