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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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군보

고려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공민왕 초기에 밀직지신사(密直知申事)에 제수되었다. 환자(宦者)인 김빠앤티무르[金伯顔帖木兒]가 왕지(王旨)를 사칭하여 그를 내승제조(內乘提調)로 삼은 일이 발각되어 제주에 유배되었다. 기철(奇轍) 등이 복주(伏誅)될 때에는 그 무리로 오인되기도 하여 삼각산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돈에게 다시 등용되어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고 목인길(睦仁吉) 등과 함께 서무를 관장하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를 부끄러이 여겨 왕에게 최영(崔塋) 등을 중용하고 신돈을 멀리할 것을 진언하기도 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이일로 그는 정부(政府)에는 있었지만 국사(國事)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1366년(공민왕 15) 신돈을 탄핵하다가 쫓겨난 이존오 등을 변호하다가 신돈의 미움을 받고 여흥으로 유배되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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