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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송수

고려 공민왕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첨의평리 원선지(元善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첨의참리 김변(金賆)의 딸이다. 1339년(충숙왕 복위 8)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곧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수찬이 되었다. 1348년(충목왕 4) 헌납으로 있을 때 찬성사 정천기(鄭天起)가 고신(告身)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정방(政房)에 들어가 일을 보고 있음을 들어 탄핵하였다가 파직 당하였다. 1352년(공민왕 1) 공민왕에게 발탁되어 내서사인겸 좌부대언이 되었다. 이후 왕의 신임을 받아 지주사로 옮기고 전주(銓注)에 참여하였는데 사사로운 정에 흐르지 않고 공정을 기하였다. 1363년 홍건적의 난이 평정된 후 난리 중에 임금을 남쪽으로 파천시킨 공이 인정되어 1등 호종공신이 되었고 충근찬화공신(忠勤贊化功臣)의 호를 받았다. 1365년 정당문학에 올랐으나 곧 신돈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고 신돈의 권세를 근심하며 분하게 여기다 병을 얻어 죽었다. 예학에 밝고 시문에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묘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원주원씨세보(原州元氏世譜)』(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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