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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유

고려 충숙왕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다.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민영모의 손자이자 보문각직학사 민식의 아들로, 나이 11세에 왕자의 학우(學友)로 선발되었고 19세에는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토착 호족들에 굴하지 않고 많은 치적을 남겼다.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였을 당시 도병마사(都兵馬事)였던 유천우(兪千遇, 1209~1276)가 그를 기이하게 여겨 딸과 혼인을 시키기도 하였다. 충렬왕대에는 삼사우윤(三司右尹)을 지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찬성사(贊成事)가 되었고 1308년(충선왕 원년)에 중대광첨의찬성사판선부사(重大匡僉議贊成事判選部事)로 치사(致仕)하였으며 1319년(충숙왕 6) 복흥군(福興君)에 봉해졌다. 1320년(충숙왕 7)에 왕이 원(元)에 머물며 돌아오지 않는 틈을 타 권한공(權漢功, ?~1349) 등이 심왕(瀋王)을 옹립하기 위해 백관을 모아 위협하며 강제로 서명을 하게했을 때 백관들이 그 위세에 눌려 영합하거나 혹은 회피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민종유는 신하의 본분을 외치며 음모와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 1321년(충숙왕 8) 이성(異姓)으로 군(君)에 봉해진 자를 혁파하는 예에 따라 1321년(충숙왕 8) 봉군(封君)의 칭호가 회수되고 찬성사(贊成事)로 환원되었다. 나이 80세에 졸(卒)하니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성품은 장중(莊重)하였으며 전고(典故)에 밝아 실무에 능하였다. 1871년(고종 8)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여주읍지』(1871), 『여흥민씨삼방파보』, 『고려묘지명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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