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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민식

고려 신종대(神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민영모(閔令謨)의 아들이다. 1167년(의종 18) 과거에 급제하였고 1197년(명종 27) 내시부(內侍府)에 소속되었다. 1198년(신종 1) 우산기상시(右散騎尙侍)로서 기거사인(起居舍人) 장윤문(張允文, ?~1211) 등과 함께 연등(燃燈)·팔관회(八關會)에 과도한 비용이 소요됨을 지적하였으며 1201년(신종 4) 형부상서(刑部尙書)를 거쳐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가 되었다. 성품이 활달하고 큰 도량이 있어 비록 고귀(高貴)하고 현달(顯達)한 이를 보더라도 이전부터 알고 있는 듯이 대하였다. 귀천(貴賤)의 구분 없이 사람들을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가까이 하였다. 명종대에 서얼(庶孼) 출신의 승려 홍기(洪機) 등이 권세를 얻어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아부할 때 민식만이 홀로 그 폐해를 비판하였다고 한다. 1871년(고종 8)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여주읍지』(1871), 『여흥민씨삼방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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