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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정

고려 공민왕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며 문인공(文仁公) 민지(閔漬)의 아들이다. 1301년(충렬왕 27)에 과거 급제하고 이듬해 전시(殿試)마저 합격한 후 보성(寶城)과 강화(江華) 등지로 여러 차례 지방 수령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쌓았다. 특히 양광도(楊廣道)에서는 권귀(權貴)에게 뇌물을 바치려던 자를 체포하여 호강배(豪强輩)들이 법령을 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충숙왕대 사헌장령(司憲掌令)을 거쳐 1332년(충숙왕 복위 1)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임명되었으나 윤석(尹碩, ?~1348)·손기(孫琦) 등의 옥사가 일어나자 원(元)에서 객성태사(客省太史)로 파견된 도치(都赤)에 의해 행성(行省)에 갇혀 심문을 받았다. 이후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전주(銓注)를 총괄하였고 관직(官職)의 수를 줄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았다. 1871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여주읍지』(1871), 『씨족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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