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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재

조선 연산군대(燕山君代)의 외척(外戚)으로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임사홍(任士洪)의 아들이다. 예종(睿宗)의 공주인 현숙공주(顯肅公主)와 결혼하여 1475년(성종 6) 숭덕대부 의빈부의빈이 되었고 1485년(성종 16) 풍천위(豊川尉)가 되었다. 1494년 장원서제조로 있으면서 별좌의 노비와 간통하고, 할머니가 여주(驪州)에서 사망하자 100일간의 휴가를 얻은 것을 기화로 첩을 얻어 들였다가 직첩을 빼앗기고 외방에 부처(付處)되었다. 1495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복직되었으나 곧 죽었다. 임광재가 공주와 결혼하자 성종(成宗)이 집터를 내 주었는데 그 터에 왕기가 서렸다 하여 논란이 일었다. 임광재의 할아버지인 임원준(任元濬)이 나서서 “그곳에 두 번이나 벼락이 떨어졌고 세종대왕의 아들 한 분이 일찍 죽어 과부골이라고 소문났으니 명당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고 강변하여 겨우 무마되었으나 이 문제의 터에 집을 짓고 살았던 임광재와 현숙공주는 사이가 나빠져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임광재가 죄를 지어 귀양 갈 때에도 대비전에 머물고 있던 공주는 나와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 참고문헌 :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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