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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유씨

진주 유씨(晋州 柳氏)는 효종 영릉과 관련한 일화가 있는 집안이다. 숙종 때 효종의 능을 옮기려 능을 보러 가는 도중에 머문 왕대리의 진주 유씨 18대조 묘 부근에 능을 쓰게 됨으로써 진주 유씨 조상묘를 여주시 오학동 정터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 때 문신인 문간공(文簡公) 유염(柳琰)은 진산군(晉山君) 인비(仁庇)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평리(評理) 안간공(安簡公) 혜손(惠孫)이다. 진주 출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왕 때에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공양왕 즉위 후 이림(李琳)의 손녀사위라는 이유로 멀리 유배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사면되었다. 조선 개국 후인 1402년(태종 2)에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를 거쳐 1417년에 판한성부사를 지냈으며, 이후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생활이 깨끗하다고 하여 세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그의 묘가 오학동 정터마을 진주유씨세장지에 있다. 이들은 진주 유씨 안간공파 중 소재공파로 그의 아들이 대신면 가산리로 내려오고 그의 손자 때 하림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晋州 柳氏 系譜
1世始祖仁庇(晉山君)
2世
3世惠孫(安簡公)
4世琰(墓 오학동)
5世苯(墓 오학동)
6世繼源(墓 오학동)
7世自恭(墓 오학동)
8世柔(墓 오학동)
9世順善 (監司 素堂)從善
10世 錫弼 錫賢錫輔
11世 益朋 文明 景朋
12世 時稷時村
13世 日三 壽蕃
14世 瑞麟 應辰
15世東垣 德祖
16世明周 載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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