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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한산 이씨

여주와 한산 이씨(韓山 李氏)와의 인연은 여말선초 목은 이색까지 올라간다. 양도공파(良度公派) 후손들로 현재 대신면 보통리에 거주하는 이신복(79)으로부터 18대조다. 양도공 8세 숙묘(叔畝, ?~1439)는 인재공(麟齋公) 7세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종학(種學, 1361~1392)의 셋째 아들인데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태종 때 숙위사대호군(宿衛司大護軍)과 호조참의를 거쳐 1418년(태종 18)에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19년(세종 원년)에 사은사(謝恩使) 이원(李原)을 따라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고, 이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434년(세종 16)에는 형조우참판·형조좌참판·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고, 그해 12월에 진헌사(進獻使)로 명(明)에 갔다가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이어 형조판서·지중추원사·경창부윤(慶昌府尹)을 거쳐 1436년에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1437년에는 처가 진안대군(鎭安大君) 방우(芳雨)의 딸이었으므로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첫째 아들 숙야(叔野) 집안은 청주에 거주하고 양도공 후손들은 연천에서 살다가 17세기 후반에 여주 보통리로 분가하여 들어왔다. 숙종 때 문신인 정혜공(貞惠公) 이규령(李奎齡, 1625~1694)은 충정공 현영(顯英, 1573~1642)의 손자이고 파주목사 휘조(徽祚, 1603~1681)의 아들인데 병조판서를 지낸 후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와 그의 아버지 묘가 북내면 내룡리에 있다.

여주에는 또 목은 이색의 아들인 양경공(良景公) 종손(種善, 1368~1438)의 후손들이 있다. 세조 때 문신인 문열공(文烈公) 이계전(李季甸, 1404~1459)은 양경공의 아들이며 양촌 권근의 외손으로 계유정란 때 좌익공신이 되고 이조판서를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른 인물인데 묘가 점동면 사곡리 가래울 마을 뒷산에 있다.

韓山 李氏 系譜
1世允卿
2世孝進
3世昌世
4世自成
5世
6世
7世2男 種學(麟齋公)3男 種善(良景公)
8世3男 叔畝(良度公)3男 季甸(판중추부사, 墓 점동면 사곡리)
9世元增
10世永根(韓山君)長潤 德潤孫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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