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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이씨

평창 이씨(平昌 李氏)는 경주 이씨에서 분파하였다. 여주 입향조(入鄕祖)는 12세 익평공(翼平公) 계남(季男, ?~1512)이다. 자는 자걸(子傑)로 음직으로 1468년에 감찰에 임명되었다. 1479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486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근무하다가 그해 우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489년 좌승지로 있다가 같은 해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이듬해 호조참의가 되었다. 1491년 충청도관찰사로, 1493년 경상도관찰사로 갔다가 한성부우윤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나아갔다. 1496년에 호조참판이 되었고 2개월 후에 대사헌이 되었다. 여산군 때에 형조참판, 호조판서 등을 지냈지만 중종반정이 있던 날 반정에 협력한 공으로 보사반정공신 2등에 녹훈되고 평원군(平原君)에 봉해졌다. 1511년에 이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여주의 평창 이씨들은 익평공의 후손들이다.

平昌 李氏 系譜
始祖
8世 天驥(여말선초)-中始祖
9世
10世宗美 / 1男 韻
11世永瑞
12世季男(蔭, 吏判, 靖國功臣, 翼平公)
13世珎寶
14世希哲 希明 希陽
15世明哲
16世 廷華 壽鵷條昌
17世翕玉
18世 昌彦 相衡
19世
20世 大錫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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