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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 구씨

여주의 능성 구씨(綾城 具氏)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시조의 15세 구영(具瀛)이 16세기 중반경 광주에서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부터다. 18세 구삼중(具三重)은 1656년(효종 7)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이곳에 입향한 파가 있는데, 이는 전서공파(典書公派)로서 개성윤(開城尹) 및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지낸 7세 도원수공파의 파시조 성로(成老) 때 집안의 기틀을 잡았고, 세종 때 인물인 9세 인효(仁孝)가 점동면 부구리(富九里)로 들어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구성로는 고려후기의 무신으로 1337년(우왕 3)에 대호군을 지냈으며, 1388년(우왕 14) 4월에 고려가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최영(崔瑩)을 팔도도통사, 조민수(曺敏修)를 좌군도통사, 이성계(李成桂)를 우군도통사로 삼아 명(明) 정벌을 시작하였는데 이때 강원도부원수로서 참가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왜적이 광주(光州)를 함락시키자 경상도 부원수가 되어 왜구를 토벌하여 왜적 5명을 베었으며, 1389년(공양왕 원년)에 이성계 위화도 회군을 도운 공로로 공신반열에 녹훈되었다.

19세 석의(錫儀)는 1812년(순조 12)에 정려(旌閭)를 제수받았다. 부구리 앞말 도로변에 1884년(고종 21)에 중수된 효자정려문이 있다.

현재 대신면 가산리에 30호 정도, 점동면 부구리에 약 20호가 산다.

綾城 具氏 忠烈公派 系譜
始祖存裕
3世
4世7男
5世榮儉
6世
7世3男成老(江原道都元帥)
8世
9世致寬(능성부원군 忠烈公) 致明 致洪
10世
11世長孫
12世元之
13世
14世審行
15世
16世連源
17世夢協
18世時經
19世聖問
20世晩遜
21世翊夏
22世仁鐸
23世潤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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