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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정씨

하동 정씨(河東 鄭氏)의 시조는 정응(鄭膺)이다. 여주 입향조(入鄕祖)는 11세 여호(如虎)로, 그는 선조 때 인물로 말년에 흥천면 신근리(莘根里)로 입향하였다. 함평현감을 지낸 12세 응린(應麟, 1531~1592)은 임진왜란 때 장자 적(迪), 자부 청풍 김씨, 3자 괄(适), 4자 일(逸) 등과 지평에서 전사(戰死)하여 영조 때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충효열 3개 비가 흥천면 신근리에 있다. 정응린의 묘는 흥천면 상백리 건너말에 있다. 정적(1556~1637)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경복(景福)의 증손으로 선조 때 형조판서를 제수받았다. 능서면 용은리 새터말 입구에 묘가 있다.

응운(應雲)은 문성공(文成公) 정인지의 6세로 서울에서 16세기 말에 길천면 내양화(內楊花)로 내려왔다. 자손들은 흥천면 상백리(上白里)에 거주한다. 7세 한붕(翰鵬)은 1743년(영조 19)에 정려를 받았다. 7세 시진(始振)은 1895년 을미왜변 때 화를 입어 고택이 멸실되었다고 한다.

河東 鄭氏 系譜
始祖
2世
3世
4世承慶
5世台輔
6世熙(圃隱門人)
7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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