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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우씨

단양 우씨(丹陽 禹氏)는 흥천면 계신리 외에 대신면 송촌리 갈산 등지에 60여 가구가 거주한다. 10세 충정공 우현보(禹玄寶, 1333~1400)는 충청도 단양 사람으로 1355년(공양왕 4)에 과거에 올라 한림(翰林)에 들어가서 청환요직(淸宦要職)을 모두 거쳐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에 이르렀고, 1399년(정종 원년)에 단양백(丹陽伯)을 하사받았다. 다음해인 경진년에 이방간(李芳幹)이 난을 꾸미려 할 때 이를 미리 듣고 아들 홍부(洪富, ?~1414)를 주상의 잠저(潛邸)에 보내 고함으로써 방비할 수 있었으므로 난이 평정된 후 추성보조공신(推誠補祚功臣)을 하사받았다. 이때에 병으로 죽었는데 68세였다. 충정(忠靖)의 시호를 받았다. 1412년(태종 12)에는 정평공 우홍부(禹洪富, ?~1414)와 우홍강(禹洪康, 1357~1423)을 원종공신(元從功臣)에 수록하였다.

우홍부(?~1414)는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였다. 1392년(태조 원년) 6월 전의감부령(典醫監副令) 재직 중에 이성계의 구신(舊臣) 제거 때 관직을 삭탈당하고 원방에 유배하도록 결정되었다가 방면되었으며 1398년(태조 7)에 직첩(職牒)을 환급받았다. 1400년(정종 2)에 개성유후사부유후(開城留後司副留後)에 서용되었다. 1412년 방간의 난에 대한 공로가 다시 논의되어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되고 예안군(禮安君)에 봉군되었다. 우홍강도 아버지 음덕으로 벼슬에 나아갔고 1412년 우씨 일문이 방간의 난에 세운 공로를 재평가할 때 정난원종공신(靖難原從功臣)에 추록되었다.

대신면 상구리 양지마을 뒷편에 묘가 있고 윤촌리에 일가를 이루었다. 홍부의 아들 승규(承圭)는 세자좌익찬(世子左翊贊)을 지냈다. 대신면 송촌리 마야우 마을 뒷산에 그의 묘가 있다.

丹陽 禹氏 系譜
始祖
5世慶節
6世仲大
7世3男天錫
8世
9世吉生(赤城君)
10世玄寶(忠靖公)
11世2男洪富(靖亂原從功臣, 禮安君, 靖平公, 墓 대신면 상구리)
12世2男承圭 / 1男 得圭 3男 承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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