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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씨

여주에 사는 광주 이씨(廣州 李氏)들은 여말선초의 인물인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자손들이다. 여주 입향조(入鄕祖)는 시조 당(唐)의 5형제 중 둔촌 이집(또는 元齡)의 7세손인 중경(重慶, 1517~1568)이다. 자는 숙희(叔喜)이며 극견(克堅)의 증손으로 어머니는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1546년(명종 원년)에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548년(명종 3)에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 정언·부수찬을 역임하고 1550년(명종 5)에는 수찬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고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여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63년(명종 18)에는 이조참판을 지내고 이듬해 대사헌을 겸하는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63년에 이량이 귀양가게 되었을 때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으나, 1565년(명종 20)에 풀려 부호군에 임명되었다가 이튿날 다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명종 때에는 청백리로 추앙받았다. 그가 대신면 당남리(唐南里)로 입향한 이후 15~16대 내려오고 있다.

이와는 달리 둔촌의 3세 예손(禮孫)의 중형(仲兄)이 충희공(忠僖公) 이인손(李仁孫, 1395~1463)인데, 영릉을 천장할 때 그의 묘를 능서면 신지리(新池里) 새미실마을 북쪽 북성산 줄기로 이장하면서 인손의 현손인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보다 2세 아래인 한음 이덕형(李德馨)의 후예가 여주 관내에 퍼지게 되었다. 이인손은 세조 때 문신으로 1417년(태종 17)문과에 입격하고 1454년(단종 2) 계유정란의 공으로 호조판서에 승진하고 이듬해 즉위 후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봉해졌다. 1459년(세조 5)에는 우의정에 올랐다. 광주 이씨가 여주 내에 모두 150여 호 된다고 한다.

廣州 李氏 系譜
1世集(元齡, 호 遁村)
2世之直
3世2男仁孫(忠僖公)禮孫
4世2男克堪 5男 克均2男 克堅
5世世佐世俊 1男
6世4男守貞守忠 英符
7世2男浚慶 振慶2男 重慶
8世禮悅民聖
9世士修德馨 仁崇
10世1男必亨 1男如圭
11世象乾
12世允天
13世壽仁
14世光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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