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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신씨

금사면 하호리, 궁리뿐 아니라 가남읍 본두리, 북내면 내룡리 등지에 분포한 평산 신씨(平山 申氏)들은 15세 사간공 호(浩)를 파시조로 하는 사간공파 후손들이다. 여주 입향조(入鄕祖)는 20세 성미(誠美)와 정미(廷美)로, 신성미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개군면(현 양평군) 추읍산(趍揖山)으로 낙향하였다. 25세 신목(申穆, 1649~1706)은 효행이 뛰어났으며 죽은 후 승정원 좌승지로 증직되었다. 묘는 가남읍 화평리에 있다. 비문은 여주 출신 유학자로 이름 났던 그의 8세손 직당(直堂) 신현국(申鉉國, 1869~1949)의 부탁으로 윤응선(尹膺善, 1854~1924)이 지었다.

그의 2남 훈(勳)은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지냈고 27세 종(琮) 이후 가남읍 본두리(本斗里)에서 세거(世居)하여 왔다. 1960년대까지 60여 호의 주민 중 대부분이 평산 신씨였다.

5남 21세 휴(烋)는 금사면 궁리(宮里)로 입향하였고 22세 익수(翼壽) 이후 금사면 하호리(下虎里)에서 대대로 거주해왔다. 현재 12위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20세 판서공 정미(廷美)와 그의 아들 찬성공 묵(默) 등 3위를 모시는 재실이 여주시 월송동 삼밭골에 있다. 그러나 평산 신씨로서 거주자는 한 집으로 재실을 관리한다. 음력 10월 15일에 시제를 지내는데 세 분 상을 세 번 모신다. 점동면 당진리에 3집이 살고 있다.

『조선의 성』에 나온 자료를 보면 평산 신씨는 가남읍 본두리(本斗里)에 22호가 산다고 되어 있다.

平山 申氏 系譜
始祖 崇謙
12世仲明
13世君平
14世
15世
16世敬源
17世元祐
18世永錫
19世
20世誠美 / 遵美 廷美 光美 / / 順美 弘美
21世烋 / 1男 燮
22世翼壽
23世
24世原命 佑命
25世積    穆(1649~1706, 墓 가남읍 화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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