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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안동 권씨

여주의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9세 권중시(權仲時)의 두 아들 수평(守平, 樞密公)과 수홍(守洪, 僕射公)으로 나뉘어 각각 추밀공파와 복야공파가 있다. 추밀공파는 그중에서도 주로 길창군파(吉昌君派) 권규(權跬) 계열로 점동면 덕평리와 원부리, 강천면 강천리 등에 분포되어 있다. 권규(1393~1421)는 16세 권근(權近)의 3남이다. 태종의 3녀 경안궁주(慶安宮主)와 혼인하여 길창위(吉昌尉)에 봉해졌다가 후에 길창군이 된 것이다. 묘는 점동면 덕평리 능안골 북쪽에 있다. 길창군의 손자로 세조 때 문신인 19세 권집(權輯, 1431~1457)의 묘는 점동면 원부리에 있다.

추밀공파로서 17세 선(善)은 1402년(태종 2)에 문과 입격자로 능서면 백석리로 입향한 후 후손들이 21대를 내려오고 있다. 23세 영준(英俊)은 대신면 보통리에 입향한 후 후손들이 16대를 내려오고 있으며 도중에 율촌리 등지로 퍼졌다. 27세 일형(一衡, 1700~?)의 자는 신경(信卿)이고 어머니는 조상우(趙相愚)의 딸이다. 1723년(경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25년(영조 원년)에 승문원정자에 등용되었고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良) 등이 밀풍군 탄(密淵君 坦)을 추대한 무신란이 일어났을 때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46년(영조 22)에는 의주부윤이 되었으며, 1751년(영조 27)에 승지가 된 뒤 병조참판을 지냈다. 그의 묘는 강천리 상동마을의 뒷산 구릉에 있다.

복야공파의 파시조인 복야공 10세 수홍이 흥천면 신근리(莘根里)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 이후의 사정을 잘 알 수 없다. 27세 찬(燦)은 중종 때 여주시 현암동에 정착한 후 후손이 18대를 이어오고 있다. 도중에 일부는 하거리로 분거(分居)하였다. 여주시여주시 하거동에 집단을 이루고 살아 전체 100여 호 중에 60~70호가 안동 권씨다. 이웃인 이천시 설성면에도 일가가 많이 산다. 선산이 모여 있는 여주시 현암동에는 전체 30여 호 중 안동 권씨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음력 10월 제사 때면 대부분 하거동에서 현암동으로 제사를 간다.

安東 權氏 樞密公派와 僕射公派 系譜
始祖
8世利興
9世仲時
10世守平(樞密公) 守洪(僕射公)
11世 輿
12世
13世 漢功
14世皐 準 仲達
15世僖 濂 嗣宗
16世和 秉 近 鏞 執德
17世 跬(吉昌君) 忖
18世 聃 聰 繼祐
19世 訔 輯 金錫
20世時敏
13世
14世4男王煦
15世王重貴
16世2男嚴(王元富)
17世
18世節(1422~?, 忠肅公)
19世自平
20世世憲
21世胤禧
22世
23世
24世4男堣(1610~?, 參判)
25世斗相
26世益文(義禁府都事)
27世3男一衡(墓 강천면 강천리)
28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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