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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신)안동 김씨

안동 김씨 중 신안동파는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한다. 이곳에서는 특히 충헌공(忠憲公) 김창집(金昌集)의 후손들이 현달하였다. 이들의 묘는 주로 대신면 초현리 새재마을의 안동 김씨 세장지에 있고 또한 후손들도 모여 산다. 이곳에는 또 아랫새재 마을에 김수항·김창집·김제겸·김성행 등 노론의 핵심인물로 활약했던 선조들을 모시는 “일묘사충지문(一廟四忠之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사당이 있다. 현재 종손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1861년에 세장비(世葬碑)를 건립하였다. 여주시 상동의 영월루공원에는 김병기(1818~1875)의 공적비가 있다. 1856년(철종 7) 여주읍>에 대화재가 나서 이재민이 생겼는데, 김병기가 사재를 털어 양곡 천석을 내놓아 이를 구제하였다. 이에 그 공덕을 기리고자 공적비를 세운 것이다. 김병기의 자는 성존(聖存), 호는 사영(思潁)이다. 영의정 좌근(左根)에게 입양되었다. 1847년(헌종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다. 1849년(헌종 15) 대사성이 된 뒤 1850년(철종 원년) 이조참의·실록청수찬관(實錄廳修撰官)·규장각직제학·예조참판, 1851년 이조참판, 1852년 대사헌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하에서 이조판서·어영대장·판돈녕부사직을 두 차례, 호조판서직을 다섯 차례나 거쳤다. 1865년(고종 2)에 병조판서·좌찬성, 1866년 공조판서·예조판서, 1867년 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세도정치가 한창일 때 초야에 있던 흥선대원군과 교유해 흥선대원군 집정 때도 관직에 머무를 수 있었다.

가남면 금당리 소댕이마을 뒷편에는 고종 때 문신인 김병교(金炳喬, 1801~1876)의 묘가 있다. 1851년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현감으로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지평(持平)이 되었다.

1853년 이조참판에 특진된 뒤 수원부유수·대사성을 거쳐 1856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857년 형조·예조의 판서, 한성부판윤·대사헌·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863년에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권을 잡자 사임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용되어 1864년에 형조판서가 되고 1868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후에도 공조판서·형조판서·판의금부사·상호군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安東 金氏 忠獻公派 系譜
宣平
大孝
尙憲
光燦
壽恒
昌集(1648~1722, 忠獻公, 墓 대신면 초현리)
濟謙(1680~1722, 忠愍公, 墓 초현리)
省行(1696~1722, 忠正公, 墓 초현리)
履長(1718~1774, 掌樂院正, 墓 초현리)
復淳 泰淳(1747~1765)頤淳(墓 초현리)
泳根 敎根(1766~?) 汶根(1801~1863, 國舅, 府院君, 墓 초현리)
炳駿 炳朝炳喬(1801~1876)炳弼
文圭 永均命均 興圭
系 禎鎭 興鎭 鶴鎭 宅鎭
德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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