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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권문세족과 동족 마을

여주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일가를 이루어 살았고 대를 이어 묻힘으로써 집성촌과 같은 주거지와 선영과 같은 세장지를 만든 곳이다. 이 절에서 권문세족으로서 앞서의 여주를 본관으로 하는 여흥 민씨 외에 9개 성씨만을 다룬 것은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다음 제2절에 나오는 세거 성씨들 또한 대부분이 이 절에서 다루어야 마땅한 성씨들이기 때문이다.

권문세족으로 거론된 9개 성씨 중에 먼저 여주의 원주 원씨들은 본관은 비록 이곳이 아니고 이웃한 고을이지만 그중 핵심 집안들이 비교적 빠른 시기인 15세기 중엽에 여주로 이동하여 번창한 성씨다. 계통을 달리하는 3개 파가 지금도 여주 곳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시중공계(侍中公系)의 각 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시조를 달리하는 다른 두 계통과 구별하여 원성 원씨(原城 元氏)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체로 중앙정계로는 문과보다는 무과에 입격하여 무인으로 진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청주 한씨나 신구(新舊) 안동 김씨, 그리고 안동 권씨는 여주 관내에서는 물론 전국적인 혼반과 인맥을 가지고 있는 성씨지만 특히 이곳에 거주하거나 묘를 쓴 집안 중에서 권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여주의 남양 홍씨는 당홍 계열로 두 파가 존재하는데 16세기 후반부터 여주와 인연을 맺었지만 이곳에 세거한 이후 여주를 대표할 정도로 가장 번성한 성씨가 되었다. 무송 윤씨는 여주 입향시기가 다른 권문세족보다 빠른 여말 선초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외가인 무송 윤씨 터전인 보통리로 입향한 창녕 조씨의 경우나 김포 풍무에 거주하다가 16세기 초에 이르러 금사면 하호리로 입향한 파평 윤씨 경우에서 보듯이 타성의 여주 입성에 매개가 된 성씨이기도 하다. 특히 8세 윤사익(尹思翼) 때와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장인이 된 그의 아들 옥(玉) 때 대외적으로 권문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전주 이씨 종친은 비단 여주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권문의 기본 자격을 갖춘 성씨이지만 여주에서는 특히 서울과의 교통 등을 감안할 때 더욱 그 성격이 뚜렷하다. 광평대군파, 영응대군파, 덕천군파, 수도군파, 담양군파 등 여러 파가 존재하지만 모두 권문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창녕 조씨는 여주 입향이 다른 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임진왜란 때이지만 이후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면서 권문으로의 입지를 튼튼히 한 집안이다.

해평 윤씨는 여주의 권문세족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은 장파가 비록 여주에 살지만 이웃 양평에 더 많이 살기 때문에 2절에서 다루었다. 청주 경씨의 경우는 제학공파, 칠송공파, 평택공파, 봉화공파, 진주공파 등 여러 파가 있고 여주 여러 곳에 거주하지만, 조선 전기에 비해 후기에는 세의 확장이 뚜렷하지 않아 역시 2절에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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