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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인풍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어떠한 사회나 국가에 소속되어 자기의 직분을 다하게 된다. 인간들은 개인적으로 크거나 작거나,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자기가 참여하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반대로 개인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국가나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와 문화는 이러한 개인들의 생활, 활동, 의지, 노력의 총화이다. 마찬가지로 여주지역에 생존했던 선인들의 생활, 활동, 업적, 노력의 결과가 여주의 문화와 역사를 이룩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시대를 살면서 사회나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았던 담당자다. 그러기에 우리 선인들은 우리나라의 사회나 국가에 대한 과거의 담당자였고, 우리들은 우리 사회와 국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현재의 담당자인 것이다. 여주지역에도 이 고장을 빛내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한 선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편안하게 미래를 설계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선인들이나 현대인들은 모두 역사와 문화 발전의 주역들이요 주체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여주지역의 문화와 역사의 담당자였던 우리 선인들의 삶과 행적을 통해서 여주의 인풍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을 위해서 먼저, 이 지역에 생존했던 선인들의 개인에 대한 행적, 사상, 관직, 업적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역사 발전의 주체인 개별 인물들의 면모를 총체적이고도 객관적으로 탐색하는 일은 우리 역사의 배후와 문화의 성격을 알아보는 지름길이 된다. 역사 인물 가운데는 정의롭고 존경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정의롭고 훌륭한 사람, 역사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서술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문제는 본관이 여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 여주인으로 간주할 수 없고, 또 본관이 여주가 아니라고 해서 여주인이 아니라는 단정을 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제시된 인물 중에는 아무리 자료를 찾아보아도 여주에서 출생, 성장, 활동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여주인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는 문제점도 있다.

그래서 기존에 출간된 『여주군지』(1989)의 인물들은 이미 고증이나 확인 절차를 거친 것으로 간주하고 여주인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아울러 삼국시대의 인물은 등재된 것이 없고, 현재 생존인물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없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시대 인물들을 이 글의 주된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밖에도 『한국인명대사전(韓國人名大事典)』(신구문화사, 1983), 『한국인물대사전(韓國人物大事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국사대사전(國史大事典)』(삼영출판사, 1984),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5) 중에서 출신지가 여주로 확인된 인물들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여주의 과거 인물들을 시대별 또는 신분별, 행적별로 크게 나누어 살펴보았다. 고려시대는 문하시랑평장사 민영모(閔令謨, 1112~1194)를 비롯한 11분의 인물을 알아보았는데, 한 분이 대장군 즉 무신이고 나머지 10분은 모두 문신이었다. 조선시대는 좌의정 윤개(尹漑, 1494~1566)를 포함하여 총 72분의 인물을 고찰했는데, 그중에서 5분이 척신이었고, 나머지 67분이 모두 문신이어서 대부분의 인물이 문신이었다고 보아야겠다. 근대인물, 즉 1894년의 갑오경장 이후에 활동한 인물은 비서원승 민후식(閔厚植, 1865~1931) 이외에 총 15분을 파악해 보았는데, 신분이나 활동 분야별로 나누어보면 문신 11명, 무신 2명, 법조인 1명, 문학인 1명이다. 그 밖에 신분이나 행적별로 구분해 보면 왕후 8명, 충신 8명, 효자 26명, 열녀와 절부 7명, 의병 5명, 독립운동가 33명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서 의병과 독립운동가는 성격이 동일하다고 보아 합쳐서 독립운동가 38명으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파악된 내용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이렇게 해서 총 185명의 신분이나 행적을 알아보았는데, 그중에서 문신이 88명으로 제일 많았고, 다음이 독립운동가로 38명, 그 다음이 효자 26명으로 3위를 차지하였다. 이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문신이 48%, 독립운동가 21%, 효자 14%이다. 이러한 통계수치에 의거하여 여주의 인물들은 전통적으로 글공부를 많이 해서 문과에 급제하고 관리에 등용된 분들이 많으니 문풍(文風)이란 용어를 붙일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이나 집안의 영고성쇠를 돌보지 않고 대의를 위하여 살다간 분들이 많으니 의풍(義風)이란 말을 붙일 수 있다. 그 다음은 어떤 성격의 인물보다도 효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효풍(孝風)이란 말을 추가할 수 있다. 그래서 여주의 인풍(人風)은 문풍·의풍·효풍이란 말로 집약할 수 있다. 한편 여주의 인물들은 그 조상들이 대부분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밀려난 청류(淸類)에 속하는 사람들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왔기 때문에 충(忠)·효(孝)·예(禮)·의(義)를 기본으로 하는 사대부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후손들이 가문의 중흥을 도모하게 되었고, 중흥을 꾀하자니 자연스럽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문풍(文風)이 일게 되었다. 또한 그들 사대부들은 충효예의라는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여주 인물에 충신, 효자, 의인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8도라는 행정구역이 있었고, 이들 각도의 사람들은 그 성격과 기질이 다르다고 하여 다음과 같은 사자평(四字評)이 있었음을 참고로 제시해 둔다.

  • 경기도(京畿道)-경중미인(鏡中美人)
  • 충청도(忠淸道)-청풍명월(淸風明月)
  • 황해도(黃海道)-석전경우(石田耕牛)
  • 강원도(江原道)-암하고불(岩下古佛)
  • 전라도(全羅道)-풍전세류(風前細柳)
  • 경상도(慶尙道)-태산교악(泰山喬嶽)
  • 평안도(平安道)-맹호출림(猛虎出林)
  • 함경도(咸鏡道)-이전투구(泥田鬪狗)

이러한 평가는 조선조 정조 때 규장각 학자인 윤행임(尹行恁)의 소론인데, 경기도 사람의 기질을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한글학자 한갑수(韓甲洙)씨가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경중미인이란 ‘거울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사람이 거울을 볼 때만큼 담담하고 솔직할 때가 없다. 모습을 바로잡고, 차림을 매만져서, 좀더 단정하고 더욱 보기 좋게 꾸미자는 것이 그 참뜻이요, 속이거나 협잡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보는 사람은 없으리라. ‘테니어’는 그가 쓴 「반면의 진리」에서 “여성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을, 다만 자기의 모습을 보기 위한 것뿐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사람들의 눈에 비칠까를 보기 위해서도 그러는 것이다”라고 했다.1)

이처럼 경기도 사람들을 “경중미인”이라 했고, 그 의미는 ‘거울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과 같다는 뜻이니, 경기도에 속한 여주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좋은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거울 속의 여인처럼 아름답고 바르고 단정한 것이 여주인의 특성임을 다른 각도로 증명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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