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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경기 남부지역의 기독교 전파

경기도 남부지역의 기독교 전파는 아펜젤러(H. G. Appenzeller : 1858~1902)로부터 시작되었다.

1887년 서울에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한 아펜젤러 목사는 1889년 3월 존스(G. H. Jones : 趙元時, 1867~1919) 선교사와 동행하여 충청도 동쪽(여주, 이천)을 지나 원주, 제천, 안동을 거쳐 부산까지 전도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다. 그 후에도 아펜젤러는 서울에서 공주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1896년에는 스크랜턴 목사가 어머니 스크랜턴 대부인을 모시고 시흥, 과천, 용인을 순회하며 전도여행을 다녔고,1) 공주도 여러 번 다녀왔다. 1898년부터 경기 동남지역을 담당한 스웨어러(W. C. Swearer : ? ~1918) 선교사는 협조자 문경호(文京浩)와 동행하여 수원, 이천, 여주, 양지, 음죽, 충청도 진천, 청주, 공주 등지로 늘 순회전도를 다녔다.

1896년 스크랜턴 대부인에 의해 조직된 한국 미감리교회 여선교부에서도 세 전도부인을 경기 남부지역에 파송하여 부녀자 전도에 힘을 썼다. 그 일에 대하여 수원, 공주지역을 담당했던 스웨어러는 이렇게 보고했다.

“한국인 전도부인 세 명을 이 구역에 파송하여 여성사업을 돕도록 한 미감리교 해외 여선교회 부인들의 조처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전도부인들이 이룩한 업적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구역의 여성들이 그리스도와 접하게 될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여성들은 암흑 속에 앉아 있다. 그 암흑은 너무나 짙어 한 줄기 빛이나 희망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인데 전도부인들은 그 중에서도 효과 있게 일하고 있다.”2)

그 밖에도 피어스(N. Pierce), 루이스(E. Lewis), 구타벨(M. Guthafel), 해먼드(A. J. Hammond) 등이 수원 및 경기 동남지역 여성 전도사업에 많은 힘을 들여 선교사업 개척에 주력했다.3) 그러나 그 중에서도 스크랜턴 대부인은 자신이 양육한 전도부인 이경숙(일명 드루실라)과 경기 남부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사업을 펼쳤으며, 이 지역 선교 개척에 큰 공을 세웠다. 이경숙은 「예수는 내 생활의 보혜사」라는 글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했다.

“1897년 노부인(스크랜턴 대부인)이 병이 다 나아서 다시 조선으로 나왔다. (중략) 노부인은 그 해부터 학교 일(이화학당장의 일)을 그만 두고 남대문 안에 달성궁(상동 예배당 북편)을 사서 수리하고 살며, 나를 데리고 다니며 지방 전도를 시작였다. 그때 내가 그와같이 순행하여 다니던 곳은 수원, 오미, 장지내, 덕고개, 오천, 해미, 덕산, 여주, 이천 등지였다.
우리가 처음 돌아다닐 때에는 집들이 심히 누추하여 움 속 같아 위생에 대한 말을 많이 하였더니 그 후에 두 번째 갔을 때에는 처음보다 많이 깨끗하여졌고 세 번째 갔을 때에는 교회가 설립된 곳도 있었으며, 네 번째 갔을 때에는 교우 집치고 몹시 누추한 집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4)

스크랜턴 대부인은 이경숙과 동행하여 여주, 이천에서부터 수원, 해미, 덕산 등지의 넓은 지역을 때로는 가마를 타고, 때로는 도보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누비며 전도를 위시하여 위생, 육아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서 갈 때마다 현저히 달라지도록 농촌 부녀자의 생활을 개선시켰던 것이다.5)

또한 스크랜턴 대부인은 1893년 화성군 장지내교회를 설립한 후 자신이 성경을 가르친 김사라 전도부인을 파송했고 그 옆에 여학교를 설립한 후 김전도부인의 딸 메리로 하여금 가르치게6) 했는데 이것이 서울에서 지방교회에 전도부인을 파송한 최초가 된다. 김사라 전도부인의 생활비와 학교운영은 스크랜턴 대부인이 대주었다.

스크랜턴 대부인이 노쇠하여 활동하기 어렵게 되자 그녀가 부인성경학원에서 길러낸 수많은 전도부인들이 시골에 파송되어 전도사업을 하게 하였다.7)

이 외에도 1899년 3월 덕들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구춘경8)과 장춘명이 광주, 이천, 여주지역 전도에 힘썼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로 봉기한 의병활동을 했던 구춘경은 광주 일대를 누비며 전도활동에 주력하여 노곡교회를 세웠고, 장춘명은 여주, 이천, 양지, 음죽, 원주, 제천 등지로 순회하며 많은 교회를 세워 선교 초기 교회 성장에 큰 공을 남긴 일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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