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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큰돌문화의 한 종류이며, 건립된 시기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상당히 오랜 동안 연속적으로 이어져온 것 같다. 이런 선돌은 최근까지도 개인 또는 마을의 숭배 대상으로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큰 치성을 받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돌’, ‘선바위’, ‘장사바위’, ‘마모바위’, ‘삿갓바위’, ‘입석(立石·笠石)’, ‘입암(立岩)’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어느 것이든지 돌을 세웠거나 서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1)

옛사람들이 세운 선돌은 후대에 오면서 변천되기도 하였지만 일정한 목적에 따라서 건립되었다. 이런 건립 목적에는 크게 자연신앙의 대상물로 숭배되는 기능, 묘표(墓表)의 기능, 벽사적(辟邪的) 존재로서의 수호 기능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주지역에서 선돌유적이 조사된 곳은 북내면 석우리를 비롯하여 점동면 처리, 강천면 가야리 등이 있다.

선돌이 서 있는 곳의 입지조건을 보면, 일정한 곳에 세워진 것은 아니고 주변의 지세가 고려되어 평지나 얕은 구릉의 끝부분이다. 이것은 선돌을 세운 목적이나 기능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선돌의 크기는 모두 길이 2m가 넘어 대형에 속하는데 특히 석우리 것은 245㎝나 되어 다른 지역보다 큰 편이다. 그리고 여주지역의 선돌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은 가장자리에 손질을 많이 하였고 그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선돌은 보면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숭배 기능과 경계의 기능 등을 가지고 있던 듯하다. 경계의 기능을 지닌 선돌은 석우리 것으로 북쪽 마을(담모랭이)과 남쪽 마을(돌담)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 지역이 도계(道界)였던 점으로 볼 때 이런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이와 같은 기능의 선돌은 용인 유운리에도 있다.

그리고 처리 선돌은 바로 앞에 제단이 있고 실제로 최근까지 마을 사람들이 안녕을 기원하면서 제의 행위를 하여 왔기에 이러한 해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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