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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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개발규제와 지역경제 동향의 변화

1980년대 들어 여주지역의 경제기반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개발규제이다.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상수원 개발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팔당댐을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여주지역의 교통로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남한강도 상수도원 상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에 제정된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의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 이 법에 의하면 수도권을 ‘자연보존권역’ ‘이전촉진권역’ ‘개발유보권역’ ‘제한정비권역’ ‘개발유도권역’ 등 5개 권역으로 구분하여 교통구조와 산업·생활 및 자연환경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개발하도록 하였다. 개발유도권역을 제외한 기타 권역에서는 공장의 신·증설이 규제되고, 이전촉진권역뿐만 아니라 한강수계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자연보전권역 내에서의 공장 신·증설이 규제되었다. 여주는 가평과 함께 수도권 지역 상수원의 수질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환경보존의 측면에 중점을 둔 자연보존권역으로 설정되어 규제를 받았다.

자연보호권역 안에서는 1만 ㎢ 이상의 택지조성 사업, 3만 ㎢ 이상의 공업용지조성 사업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규제는 공장을 건설하지 못하고, 제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피폐해진 농업 외에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서 생활을 극도로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법적 규제가 완화되면서 여주지역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몇차례 개정되면서 여주에는 새로운 활로가 열리게 되었다. 1985년 이후에 자연보전권역에서 도자기산업이 특화산업으로 인정되었고, 1988년에는 도시형 업종1)이 추가되었다.

1994년에는 기존의 5개 권역을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재정비하였다. 수도권의 대부분 지역이 해당지역의 개발총량 범위 안에서 공장의 신·증설이 허용되어 규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팔당상수원에 인접한 여주의 전지역은 여전히 자연보전권역에 해당되었다. 물론 자연보호권역이라고 하더라도 택지 조성이나 공장 설립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졌지만 수도권 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거나 승인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공장 신·증설은 쉽지 않았다.

또 상수도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선정되어 규제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여주지역 전체의 41%에 해당된다. 이 지역에서는 157개 업종만 허용되었다. 특히 농촌의 주요 생계 수단인 축산의 경우도 엄격한 규제를 하였는데, 돈사(豚舍)나 우사(牛舍) 같은 축사 건설이 제한되었다. 아무튼 여주 전지역에서는 택지·공업용지·관광지 조성 사업이 3만㎢ 이상은 제한되었고, 학교 설립도 까다로웠으며 업무 및 판매용 건물의 면적도 제한되었다. 이로 인하여 관광지 조성이 어렵고 4년제 종합대학의 설립도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주는 몇 개의 산업영역은 발전을 거듭하였다. 먼저 축산업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서울과의 접근성이 향상된데다 원래 구릉지역이 많아 축산에 유리했던 여주지역은 상수도원 특별대책 권역에 해당되지 않은 가남, 북내, 점동, 능서 지역에 젖소 및 육우와 돼지고기 사육이 활성화되었고, 가남과 북내에서는 닭을 기업형으로 사육하는 곳이 생겼다. 농업의 측면에서는 상업영농이 확대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된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여주는 수도권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답작(畓作)의 비율이 매우 높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71%의 답작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점차 원예작물과 특용작물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다음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2차 및 3차 산업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체가 증가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값과 교통의 발달로 유통업 등이 발달하였다. 교육·연수·종교시설도 많아졌으며, 특히 도로변을 따라서는 음식·숙박시설이 증가하였다. 제조업체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도자기업종을 포함한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체이다. 도자기업체는 1985년 특화사업으로 지정된 이후 북내면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으며,가남읍에는 대규모 유리·침대·석가공 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이후 제조업체가 여주읍(여흥동·중앙동)을 벗어나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현재 여흥동·중앙동에는 음료와 피아노 공장을 중심으로 도로변에 제조업체가 집중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 상수도원 특별대책 권역인 능서면의 경우 공장수는 적지만 1990년대 이후 전자·통신관련 첨단제조업체가 들어서고 있다.

여주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도자기산업이다. 도자기산업은 1996년 통계에 의하면 인근 이천의 2배에 이를 정도로 여주가 전국 최대 규모인데,2) 1980년대 들어서 국민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수요의 증가, 생산설비의 발달에 따른 품질개선 및 양산체제로의 전환과 올림픽을 계기로 한 전통상품에 대한 홍보 때문에 공장의 증가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교통체계의 확충으로 관광 활성화되어 도로주변에 공장과 판매장이 늘었다. 여주도자기의 주된 품종은 생활도자기로 전체 생산의 59%를 차지한다. 또 5인 이하 종업원의 공장수가 75.4%, 10인 이하가 91.5%에 이른다.3) 이런 소규모 공장들이 협동적이고 분업적인 연계망을 형성하여 북내면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소규모 업체가 많은 것은 공장의 대부분이 가족중심의 운영 때문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북내면 이외 지역으로도 공장지역이 확대되고, 도자기 판매장이 늘어난다. 특히 공장에서 직접 판매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목아박물관과 영릉 등 관광지 주변에 판매장이 늘어나는데 이는 업체가 많아지면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도자기는 생산과 판매뿐만 아니라 문화상품으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관련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그것을 홍보하는 데 따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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