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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의 행정조직과 편제

1948년 5·10 남한 단독총선거를 통해 5월 31일에 구성된 제헌국회는 이승만을 초대 의장, 신익희를 부의장에 선출하였다.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여 7월 17일에 공포하였다. 헌법에 따라 간접선거로 치러진 7월 20일의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은 이승만, 부통령은 이시영이 당선되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제1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미군정기의 지방행정제도는 일제시기의 것을 이어받았으며, 정부수립 후에도 대체적으로 미군정기의 지방행정제도가 존속되었다. 따라서 여주군의 행정조직은 일제시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골격이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변화된 것이 있다면 정부수립 이후 지방자치법안이 제정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헌법 제8장 제96조와 제97조에 지방자치제 실시를 원칙적으로 규정하였으며,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안을 공포하여 지방자치제 실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와 도, 그리고 시·읍·면으로 하며, 군(郡)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 실시는 이승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바로 시행되지 못하였다.1)

정부수립 후 미군정기 지방행정제도가 존속되고 지방자치법에서도 군·읍·면의 명칭과 관할구역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전대로 유지하도록 규정되었다. 따라서 정부수립 당시 여주군은 여주읍 1개 읍과 점동면(占東面), 가남면(加南面), 능서면(陵西面), 흥천면(興川面), 금사면(金沙面), 개군면(介軍面), 대신면(大神面), 북내면(北內面), 강천면(康川面) 등 9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제1공화국 초기 도와 읍·면 단위는 지방자치단체로 설정되었으나 그 고리 역할을 하는 군 단위는 국가행정기관의 하부단위로 설정되는 애매한 상황에 있었다. 군의 수장인 군수는 도지사의 추천으로 내무부장관을 경유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며, 도지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소관된 국가 및 도의 사무를 수행하고 관내 자치단체를 감독하였다. 또한 군에는 군수의 자문기관인 참사회(參事會)가 설치되었는데, 참사회는 군내 각 읍·면의회에서 1인씩 선출한 참사로 조직되며, 군수의 자문에 응하고 군내 각 읍·면의 협동 또는 조정을 요하는 사무에 관하여 협의 연락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군청은 자치단체가 아닌 국가행정기관으로 설정되면서도 자치단체장인 도지사의 지휘를 받고, 또 자치단체인 읍·면을 감독하는 다소 모순되고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는 1950년대 지방제도가 지방자치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상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치단체로서의 고유업무보다는 위임된 국가사무를 처리하는 준행정기관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2)

여주군의 구체적 행정체계는 한국전쟁기 군청의 주요서류가 소실되면서 정부 수립 전후의 군 행정 상황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미군정기에 군수 이하 내무과, 총무과, 산업과, 보도후생과 등 최소 4개과가 존재했음이 확인되며, 소속 공무원 수도 채 40명이 안 되는 단순한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3) 정부 수립 후에도 대체로 이러한 미군정기의 군 행정체계를 유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수립 후 남한사회는 신생 국가의 틀이 체계화되지 않는 등 안정되지 못하였던 상황과 여주군의 행정 및 치안체계가 막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여주군의 행정체계는 변동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농촌지역 지방행정의 중요 부문은 전란수습과 양정행정, 임업행정, 보건위생 등이었으므로, 이에 맞추어 일정하게 변동되었을 것이다. 실제 1951년 12월 15일 내무부에서는 각 군에 군수, 내무과, 재무과, 산업과, 건설과를 두게 했으며, 1957년 12월 13일 ‘군직제 정원에 관한 건’에서 군수 아래 내무과를 두고 군 아래의 읍면에 읍면장, 부읍면장 밑에 서무계, 회계계, 재무계, 사회계, 호적계, 농지계를 두게 하였다.4)

그러나 군청의 단순한 조직체계와 취약한 소속 공무원 수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는데, 이는 전쟁의 와중에 중요 시설 및 서류가 대부분 소실·파손된 관계로 행정·치안 면에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 기인한다. 또한 1950년대 지방행정 업무의 상당부분이 군청-면사무소-동·리로 이어지는 행정라인이 아니라 경찰조직에 의해 추진되었던 사정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즉 1950년대는 여주군의 경찰조직이 단지 치안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유재산관리·호구조사·위생 등 일반행정 업무의 상당부분을 담당했으며, 이에 따라 경찰조직은 인원수나 담당 업무 측면에서 여주군청을 넘어선 것이 당시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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