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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 5·10선거의 특징과 그 의미

5·10선거는 미군정·이승만·한민당의 주도하에 91.7%의 유권자 등록을 확보한 속에서 치러진 남한 최초의 보통·평등선거였다. 그러나 5·10선거는 유엔 한국위원단도 우려했듯이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온갖 탈법과 선거의 자유 분위기가 크게 저해된 선거였다. 당시엔 선거 관리의 주체와 선거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사실상 선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

당시 민중들은 한반도에 통일민족국가가 아닌 일부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단독선거를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김구 등 임정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의 성공을 위해 미군정과 이승만 등 단정세력들은 유권자 등록에서부터 선거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특히 조병옥 경무부장은 군정장관인 딘의 명령에 의해 5·10선거를 1개월 앞두고 선거를 위해 한시적으로 경찰보조대인 향토보위단(향보단)을 100만 명 규모로 조직하였다. 향보단은 온갖 탈법을 저지르면서 선거의 자유 분위기를 크게 해쳤다. 김구는 당시 “국민들은 경찰과 향토보위단의 억압적인 태도하에 등록하고 또 투표를 강요당했다.”고 평가하였다.2)

여주지역의 5·10선거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선거인만큼 선거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좌파세력인 남로당의 여주군당 등이 불참하였던 상황에서 이승만·한민당을 지지하는 독촉국민회와 독청, 대청, 족청 등 우익 청년단체 등이 주도하면서 공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당시 투표소 둘레나 안에서 독청과 대청 등 우익청년단체와 향보단의 존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심지어 독청의 경우 정복을 입은 채 서 있기도 하였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선거등록을 강요하고 불법선거에 깊이 개입하는 등 온갖 탈법을 저지르면서 선거의 자유 분위기를 저해하였다.

원용한 후보가 초대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여주지역의 5·10선거는 남로당은 차치하고서라도 김구 등 임정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극우반공세력인 단정추진세력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다. 이의 결과로 남한에는 극우반공세력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설 수 있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수립 이후 제1공화국 시기는 이승만 정권의 대중적 기반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당 창당의 모체가 됨으로써 자유당 정권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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