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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따른 식민통치의 종식은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밑으로부터의 광범한 정치적 폭발을 가져왔다. 역사의 전환점인 1945년에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불과 며칠 사이에 한반도 전역은 ‘광기의 순간’으로 변하였다. 1945년의 해방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이러한 감정상태를 기억하고 있다. 단체의 폭발적인 족출(簇出), 흥분과 설레임, 집단적 철야, 폭포 같은 연설과 구름 같은 집회와 인파들, 수많은 노선의 등장과 쟁투, 공여한 바쁨과 바깥 소식에 목말라 하는 잦은 외출, 이러한 것들이 ‘광기의 순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1)

1945년에 지은 해방을 기념하는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의 시 「해방의 날」은 당시 한국인들이 맞았던 해방의 감격을 한마디로 드러내고 있다.2)

해방의 날,
서울 장안에 태극기가 물결쳤다.
옥에 갇혔던 이들이 인력거로 츄럭으로 풀려나올 제
종로 인경은 목이 메어 울지를 못했다.
아이들은 새해 입을 때때옷을 꺼내 입고
어른들은 아무나 보고 인사를 하였다.
서울 장안을 뒤덮은
태극기 우리 기,
소경들이 구경을 나왔다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태극기는 급히 준비된 것이었다.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35년간 빼앗겼던 태극기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일장기에 푸른색을 칠해 만든 태극기, 푸른색도 없어 일장기의 빨간 부분 중 절반을 먹물로 색칠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거리를 휩쓸었다. 애국가도 기억하지 못해 각기 다른 가사의 애국가를 부르면서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였다. 여운형(呂運亨, 1885~1947)의 딸 여연구(呂燕九, 1927~1996)에 따르면 “만세!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얼굴로 뜨거운 눈물이 좔좔 흘렀다.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는 사람, 마당에 뒹구는 사람…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아낙네, 심지어는 지팡이에 겨우 몸을 의지한 할아버지들까지 나와서 울고 웃고 만세를 부르며 서로 얼싸안고 돌아갔다.”고 한다.3)

35년에 걸친 식민통치의 종식은 모든 민중들을 민족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길로 재빨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식민통치의 붕괴는 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을 위한 혁명적 조건의 창출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1945년 8·15해방은 새로운 국민국가 수립의 기회이자 폭발적 대중 동원과 격렬한 정치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8월 15일 여운형의 주도로 1944년 8월에 결성되었던 ‘건국동맹(建國同盟)’을 모체로 해서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 이하 건준)’가 결성되었으며, 전국 곳곳에서 건준, 치안대, 자치위원회 등 다양한 이름의 새로운 권력기구가 형성했다. 여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도파 계열을 포함하여 좌익 계열의 건준과 인민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우익 진영에서도 지역의 명망가와 유지·지주층을 중심으로 치안유지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약칭 독촉),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약칭 한민당) 지부 등을 조직하여 좌익과 대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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