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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면

대신면의 만세시위는 윤촌리(潤村里)에 거주하는 황재옥(黃在玉)에 의해 계획, 추진되었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황재옥은 3월 1일 민족대표에 의해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에 대해 내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근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을 받고 4월 3일 동리 사람 4, 50명을 자신의 밭으로 모이게 한 후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에 체포된 황재옥은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1)

대신면에서 전개된 봉화만세운동은 호서지방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독특한 만세운동 방법으로써, 옛날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에 봉화를 올려 다른 지방에 알려 경계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2)

한편 한 기록에 의하면 여주 군내에서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임순호(林淳豪)의 주도로 각지의 부락 단위로 산에 불을 놓고 만세를 부르는 시위가 전개되었다고 되어 있는데,3) 여주에서도 봉화만세운동이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신면의 봉화만세시위를 주도한 황재옥의 재판판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재옥 재판 판결문>4)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윤촌리 140번지 농업 유교 황재옥 40세

상기자에 대한 보안법 위반 피고사건에 대하여 조선총독부 검사 千綿榮六 관여로 심리 판결함이 다음과 같다.

주문

피고를 징역 8월에 처한다.

이유

피고는 전부터 조선독립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자인바, 손병희 등의 도배(徒輩)가 조선독립을 선언한 후 각지에서 위의 독립운동을 찬동하여 극도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듣고서 이 기회에 거주하는 동리 사람들과 함께 독립시위운동을 감행하려고 꾀하여 대정 8년 4월 3일 피고의 소유인 동리의 밭에서 봉화를 올리고 이민 수십 명을 선동하여 같이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함으로써 공공의 질서를 방해한 자이다. 이상의 사실은

1. 당 법정에서 피고가 “4월 3일 밤 거주하는 동리 사람들과 같이 윤촌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일이 있다.”는 취지의 공술.

1. 사법경찰관의 피고 신문조서에 “금년 3월 1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을 선언한 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듣고서 자기도 조선독립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몰래 기뻐하고 있었다. 더욱이 여주군 개군면 및 대신면의 전반에 걸쳐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듣고서 4월 3일 거주하는 동리 자기 소유의 밭에 이 동리 사람 4, 50 명을 모아 봉화를 올리고 스스로 선창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후 군중과 같이 4, 5번 만세를 외쳤다.”는 취지의 기재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한다.

법률에 비추건대, 피고의 소위는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에 해당하는 바, 위의 범죄 성립 후 대정 8년 4월 15일 제령 제7호 제1조로 형이 변경되었으므로 형법 제6조·제10조에 따라 양자의 형의 경중을 비교하여 경한 보안법 제7조의 소정형 중 징역형을 선택하여 그 범위에서 처단할 것이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정 8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 조선총독부 판사 鏡一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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