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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면

금사면 이포(梨浦)에서는 군내 최다 인원인 3,000여 명의 군중이 4월 1일 만세시위를 벌였다.1) 이포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것은 이곳에 일제탄압의 상징인 헌병주재소가 있었고, 분노한 군중이 이곳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4월 1일에는 이포를 비롯하여 인근지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일제 조선주차군사령관은 육군대신에게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경기도 여주군내 이포에 약 3천, 안성군내 안성에 1천, 양성에 2천의 군중이 폭행하고 심지어 전주(電柱)를 불질러 넘어뜨리고 주재소를 불지르고 우편소, 면사무소를 피괴하고 공용서류, 기물을 파괴하는 등 흉포함이 극에 달하고…2)

4월 1일, 이포 헌병주재소 앞에 운집한 3,000여 명의 군중은 주재소로 쇄도하였다.3)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은 발포를 개시하였고, 주도자 10명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튿날에도 ‘불온한 형세’가 있다고 보고하였다.4) 이포 헌병주재소에서의 시위는 2일 밤 10시부터 3일 오전 5시까지 계속되었다. 만세운동에 나선 군내 각 면의 군중들은 다시 주재소를 습격하였는데, 헌병들은 37명의 시위군중을 체포하고도 ‘불온한 징조’가 계속된다고 보고하며 경계를 늦추지 못하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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