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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내면

주내면에서는 구체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군내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계획의 주도자는 상리(上里)에 거주하던 청년(당시 24세) 조병하(趙炳夏)였다. 기독교도인 그는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이 만세운동을 계획, 독립을 선언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그의 고향인 여주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분개하여 3월 하순부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것이다.

조병하는 3월 26일과 27일경 주내면 홍문리(弘門里)에 사는 심승훈(沈承薰)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각 지방에서는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에서만 평정함은 무기력한 것이니 이 지방에서도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칠 터이니 참가하라.”고 권유하였다.

또한 조병하는 4월 3일, 창리(倉里)에 거주하는 이종은(李鍾殷)의 집으로 가서 보통학교 생도인 한백웅(韓伯熊), 한돈우(韓敦愚) 등에게 “경성에서는 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방 학생들이 극히 평온함은 심히 유감이니 제군은 학생들을 선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힘쓰라.”고 권유하였다.1)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고, 조병하는 일제에 피체되어 보안법 위반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조병하의 판결문에 나타난 주내면의 만세시위 계획은 다음과 같다.

<조병하 재판 판결문>2)

경기도 여주군 주내면 상리 농업 기독교 조병하 24세

위의 보안법 위반 피고사건에 대하여 조선총독부 검사 千綿榮六 관여로 판결함이 다음과 같다.

주문

피고를 징역 1년에 처한다.

이유

피고는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 선언을 한 이래로 각지에서 독립시위운동을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거주하는 지방에서는 아무 일 없이 극히 평정함을 분개하여 정치 변혁의 목적으로 이민을 선동,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려고 꾀하여 대정 8년 3월 26, 7일경 경기도 여주군 주내면 홍문리 심승훈 집에서 그에게 대하여 “각 지방에서는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에서만 평정함은 무기력하니 이 지방에서도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칠 터이므로 이에 참가하라”는 뜻을 권하여 그를 선동하였으며, 또한 범의(犯意)를 계속하여 동년 4월 3일 같은 면 창리 이종은 집에서 보통학교 생도인 한백웅, 한돈우에 대하여 “경성에서는 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금(尙今) 지방 학생은 극히 평온함은 심히 유감이니 제군은 학생을 선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힘쓰라”는 뜻을 권하여 이들을 선동함으로써 안녕 질서를 방해한 자이다.

위의 사실들은 피고들이 당 법정에서 판시함과 동일한 취지로 공술한 것으로 이를 인정한다.

법에 비추건대 피고의 소위(所爲)는 조선형사령(朝鮮刑事令) 제42조에 해당하는 바, 위의 범행 후에 발포된 대정 8년 4월 15일 제령(制令) 제7호에 의하면 동 제령 제1조에 해당하므로 형법 제6조, 제8조, 제10조에 따라 신·구 양법을 비교 대조하면 구법인 보안법 제7조의 형이 경(輕)하므로 동 법조를 적용하여 소정형 중 징역형을 선택, 그 범위 내에서 처단할 것으로 여겨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정 8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 조선총독부 판사 有澤作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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