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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의 인구변동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1910년 여주의 세대와 인구는 각각 10,013호와 43,994명이었다. 이후 여주의 인구는 매년 증가하여 일제 말인 1942년이 되면 13,092호와 73,817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30여년간 세대는 23.5%, 인구는 40.4%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동안 여주 인구변동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1910년 4만 3,994명이던 인구가 6년이 지난 1916년에는 5만 7,429명으로 1만 3,435명이나 증가한 점이다. 이 수치를 사실의 정확한 반영으로 인정하게 되면, 6년 사이에 30% 정도의 인구급증이 있었던 셈이다. 이는 1925년부터 1942년에 걸친 여주의 인구증가율(14.6%)을 감안할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1914년 이래 일제의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 여주지역의 행정구역이 변동한 것과 여주의 인구변동을 연결해 이 시기 여주의 급작스런 인구증가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1906년도와 1910년 단계의 통감부 혹은 총독부 통계수치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시기까지는 한반도 전역에 걸친 근대적인 대규모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표본조사에 의존하거나 혹은 조선 말기까지의 중세적 통계를 적절히 가공처리하여 활용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916년 단계의 수치는 전국에 걸친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던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사실을 많은 부분 반영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여주의 인구변동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1916년 이후의 통계수치가 될 것이다.

어쨌든 당시의 인구 규모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1916년 여주의 세대와 인구는 각각 1만 1,308호와 5만 7,428명이었다. 26년이 지난 1942년이 되면 세대와 인구는 각각 1만 3,092호와 7만 3,817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세대와 인구는 각각 1,784호와 1만 6,388명이 증가한 셈이다. 비율로는 전자가 약 15.8%, 후자는 약 22.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여주의 세대와 인구가 적지 않게 증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구증가의 원인으로는 한말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던 서구적인 의료제도의 확대와 그에 따른 근대적인 위생, 청결 사상의 보급 등을 들 수 있겠다.

다음으로 여주의 각 면별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여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면은 주내면이다. 1935년 무렵에는 9,883명으로 인구가 1만 명에 육박하였고, 1942년에는 1만 1,343명으로 1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1935년 당시 주내면과 비슷한 규모의 인구를 가진 여주 주변의 면은 이천군 청미면(11,072명)과 이천면(9,591명), 양평군 갈산면(9,608명) 등을 들 수 있다. 1935년 당시 여주의 나머지 9개 면은 1개 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구가 5,000명을 넘고 있다. 이는 인근의 이천군의 경우와는 약간 다른 양상이다. 이천군의 경우에는 1만 명에 육박했던 청미면과 이천면을 제외하면 나머지 면의 인구는 모두 5,000명 내외의 규모로 두 면과의 격차가 크게 나고 있다. 즉 이천군의 경우는 큰 면과 작은 면의 구분이 분명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여주군은 주내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대체로 7,000~8,000명 규모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5,000명 이하의 면은 단 1개 면(개군면)에 지나지 않는다. 여주의 면들은 전반적으로 인근 이천군의 면들보다 훨씬 인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여주의 10개 면의 인구 규모는 서로 큰 격차 없이 비교적 대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주의 직업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표와 같다. 여주의 경우 1930년 당시 농업인구가 전체의 83.8%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여주군 모든 면의 농업 인구가 비슷한 것은 아니다. 주내면의 경우는 다른 면에 비해 농업인구가 훨씬 적은 비중(66.9%)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상업, 공업, 교통업, 공무자유업, 가사사용인 등에 종사하는 인구가 다른 면에 비해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주내면이 당시 각종 관공서와 학교, 금융조합 등이 위치한 여주의 행정·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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