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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화 교육정책과 조선어 금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제가 실시한 제반 황국신민화 정책은 육군특별지원병령(1938. 2)과 제3차 조선교육령(1938. 3), 그리고 창씨개명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육군특별지원병령이란 조선인도 군대지원이 가능하게 한 이른바 지원병제를 확립한 조처였다. 일제는 1938년 2월 22일 칙령 제95호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고, 이어서 시행규칙 등 여러 법령을 발포하여, 4월 3일 지원병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제도를 처음 실시한 1938년에는 지원자수가 2,946명이었고 그 가운데 406명이 입소한 데 반하여, 지원병 숫자가 해마다 늘어나더니 징병제가 실시되기 직전인 1943년에는 지원자 30만 3,294명, 입소자가 6,300명에 이르렀다.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80만이 넘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지원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황군(皇軍)’에 지원하게 되었다.1) 미나미 총독이 “지원병제도의 실시로 내선일체의 정책은 절정에 달하였다.”고까지 평가한 이 제도는 이후 인적 동원의 최고수준이라 할 수 있는 징병제를 실시하기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제3차 조선교육령이란 징병과 징용으로 상징되는 일제의 인적 수탈을 위한 준비조처로서 교육을 통하여 조선인을 이른바 ‘황국신민’으로 만들어내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을 대외침략의 병참기지로 재편성함과 동시에,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국민의식의 형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3차 조선교육령이 조선인의 전쟁동원을 위해 1938년 2월에 공포된 육군특별지원병령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제3차 조선교육령은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을 교육분야에서 구체화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 체제의 발족 등을 계기로 개정된 1943년의 제4차 조선교육령도 기본적으로는 이 같은 교육정책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제가 전시체제하 조선의 교육제도를 규정한 제3차, 제4차 조선교육령과 그 시행세칙으로 볼 수 있는 소학교규정(1938), 중학교규정(1938, 1943), 국민학교규정(1941) 등은 일본과 동일한 교육 방법과 내용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충량한 황국신민’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이었다. 1938년 3월에 공포된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학교 이름부터 일본과 동일하게 바뀌었다. 보통학교를 6년제의 심상소학교로, 고등보통학교를 5년제의 중학교로, 여자고등보통학교를 고등여학교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소학교·중학교규정에 따라 소학교와 중학교의 교과목은 이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황민화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수신과의 수업시간이 이전에 비해 2배로 증가하는 등 거의 모든 교과에서 황국신민·내선일체를 강조한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특징은 조선어가 수의과목으로 바뀐 점이다. 수의과목이란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좋고 안 가르쳐도 좋다는 과목이다. 일종의 선택과목인 것이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1911년 8월에 조선교육령 공포하여 한국의 교육제도를 재편하였다. 보통학교의 경우 단일 교과목이던 국어(조선어)가 일제 강점 후 ‘조선어급한문’이란 교과목으로 통합되었고, 주당 시간수도 총 10시간(조선어 6, 한문 4)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반면에 종래 주당 6시간이던 일본어는 10시간으로 늘어났다. 1920년 11월 보통학교규칙을 개정하여 보통학교를 종래의 4년제에서 6년제로 바꾼 일제는 1922년 2월 제2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였다. 2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조선어급한문’이란 교과목에서 한문이 분리되어 수의과목으로 되고, 조선어는 단일과목으로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조선어 수업시간은 더욱 줄어들게 되었고, 일본어 수업시간은 도리어 증가하게 되었다. 보통학교 전체 학년의 주당 조선어 수업시간은 총 20시간인 데 비해, 일본어 시간은 그 3배가 넘는 64시간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1929년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조선어의 주당 수업시간을 일부 변경한 일제는 드디어 1938년 3월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해 그동안 필수과목이던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변경하였다. 물론 조선어를 가르칠 교수내용과 시간수도 나와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을 실시한 일제는 1941년에 공포된 국민학교규정에 따라 소학교의 명칭을 국민학교로 고쳤으며, 교과목간 상호관련성을 중시하고 궁극적으로 황국신민의 연성을 기르기 위해 종래의 수신·국어·국사·지리를 통합하여 국민과로 만드는 등 교과목을 통합하였다. 또한 1943년 3월 제4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해 국민학교, 중등학교, 고등·전문학교 및 사범학교 교육을 체계화하였으며, 조선어 과목을 중학교에서도 완전 삭제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중학교규정을 공포하였다.

1943년 10월 총독부에서는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방책’을 결정하여 대학·전문학교를 전시체제로 재편성하였고, 조선인 학생들의 전시근로동원을 조직적으로 강화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학도징병’ 등 학생·학교를 대상으로 한 전쟁수행을 위한 다양한 조치가 연달아 발표됨에 따라 학생들은 생활 전체를 전쟁협력에 바쳐야 했고, 학교의 태도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1944년에는 연희·보성 등 전문학교의 생도모집을 정지시키고, 보성전문은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연희전문은 경성공업경제전문학교로 강제로 재편하였다. 숙명·이화전문학교는 여자청년연성소 지도원 양성기관으로 개편하였으며, 중등학교를 농업·공업학교로 전환하였다. 이처럼 일제 말기 일제의 학교 정책과 교육 역시 다른 모든 분야에서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전쟁수행을 위한 인적·물적 수탈을 위한 체계로 만들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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