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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일제강점기 여주의 인구 변동

일제강점 이후 총독부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확립 강화에 따라 여주군이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주로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여주군내의 계층 분화에 초점을 맞추어 그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 본 절의 목적이다. 우선 본격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에 대한 검토의 전제로서 강점기 여주군의 인구변동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다. 대략 5년 단위로 인구 변동 상황을 나타낸 것이 (표 1)이다.

(표 1)에서 무엇보다도 1910년 4만 3,994명이던 인구가 6년이 지난 1916년에는 5만 7,429명으로 1만 3,435명이나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위의 수치를 사실의 반영으로 인정하게 되면, 6년 사이에 30% 정도의 인구 급증이 있었던 셈이다. 이는 1925년부터 1942년에 걸친 여주군의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1906년도와 1910년 단계의 통감부 혹은 총독부 통계 수치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까지는 한반도 전역에 걸친 근대적인 대규모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표본조사에 의존하거나 혹은 조선 말기까지의 중세적 통계를 적절히 가공 처리하여 활용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916년 단계의 수치는 전국에 걸친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던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사실을 많은 부분 반영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여주군의 인구변동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1916년 이후의 통계수치가 될 것이다. 1910년 이전의 통계수치에는 적지 않은 오류가 있고 대체로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이 외에는 통계수치가 없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당시 인구의 대체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첨부하였다.

당시의 인구 규모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1916년 여주군의 세대와 인구는 1만 1,308호, 5만 7,428명이었다. 26년이 지난 1942년이 되면 세대와 인구는 각각 1만 3,092호, 7만 3,817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세대와 인구는 각각 1,784호, 1만 6,388명이 증가한 셈이다. 비율로는 전자가 약 15.8%, 후자는 약 22.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강점기 동안 여주군의 세대와 인구가 적지 않게 증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구증가의 원인으로는 한말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던 서구적인 의료제도의 확대와 그에 따른 근대적인 위생, 청결사상의 보급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여주군내의 면별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강점기 여주군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면은 주내면으로, 1935년 무렵에는 9,883명으로 인구가 1만 명에 육박하였고, 1942년에는 1만 1,343명으로 1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1935년 당시 주내면과 비슷한 크기의 주변 군의 면으로는 이천군의 청미면(1만 1,072명), 이천면(9,591명), 안성면(1만 2,600명) 등을 들 수 있다. 1935년 당시 여주군의 나머지 9개 면은 1개 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구가 5,000명을 넘고 있다. 이는 인근의 이천군의 경우와는 약간 다른 양상이다. 이천군의 경우에는 1만 명에 육박했던 청미면과 이천군을 제외하면, 나머지 면의 인구는 모두 5,000명 내외의 규모로 두 면과의 격차가 크게 나고 있다. 즉 큰 면과 작은 면의 구분이 분명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여주군은 주내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대체로 7,000~8,000명 규모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5,000명 이하의 면은 단 1개 면으로 지나지 않는다. 여주군의 면들은 전반적으로 인근 이천군의 면들보다 훨씬 인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여주군내의 10개 면의 인구 규모는 서로 큰 격차 없이 비교적 대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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