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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구성의 변화

한편 일제는 이러한 지방제도 변화의 목표를 ‘조선의 재정적 독립’·‘내지와 동화’로 잡았기에 이러한 목표를 실현시킬 주체인 면장에 ‘유력자’를 선임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1) 통폐합조치와 더불어 지방통치의 안정화를 달성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될 재정적, 인적 기반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경우 대략 62%의 면장이 새로운 면장으로 바뀌었으며, 전국적으로도 상당수의 면장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 새로 임명된 면장들은 지역자치의 주역이었던 명망가층은 아니었다. 한말 관청고원으로 근무하던 인물들이 중심이며 그 밖에 중추원의관, 군수, 군참사 등을 지낸 인물들이었다. 요컨대 한말, 통감부시기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신문물에 접해 관리로 진출했던 층으로, 신문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제의 통치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했던 계층들이었다.

한편 단계적인 제도개편을 통해 지방통치질서의 변화를 추진해온 일제는 1910년대 후반이 되자 이러한 제도변화의 완결점으로 면제를 실시하였다. 이미 행정구역의 통폐합조치 등을 통해 면을 매개로 한 행정력 강화를 추진해왔지만, 이제 면의 기능을 법제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지방통치구조의 완성을 꾀한 것이었다.

1917년 10월에 반포된 제령1호 ‘면제’ 및 부령 제34호 ‘면제시행규칙’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면제의 골자는 일본인 거주자가 비교적 집중되어 있는 지정면과 그 외의 보통면으로 나누어 지정면에 도장관 임명의 상담역을 두고 면 아래의 신동리에 무급직인 구장을 두며 면이 담당할 업무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규정하고 면 부과금의 항목과 세무관계 수속에 대해 자세한 규정을 두는 것이었다.2) 이러한 면제의 내용은 일본의 정촌제를 모델로 하였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은 면의 독립적 행정력을 강화하면서도 면의 자치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곧 잘 정비된 말단 행정단위를 강화시켜간다는 것이 핵심 의도였다. 일제는 면을 전초 기지로 하는, 지방사회 장악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완비하면서 동장을 구장으로 바꾸어 자치적 지역운영 관행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동리 내 유지층의 위상을 바꾸어나간 것이었다.3)

3·1운동 이후 일제의 지배정책은 또 한번 바뀌었다. 헌병경찰제라는 유례 없는 무단통치에도 불구하고 전민족적 저항에 부딪힘으로써 그 한계가 전면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압적 지배정책에 한계가 있음을 실감한 일제는 강압일변도에서 조선인을 회유포섭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문화정치’라고 명명된 1920년대의 지배정책이 그것이었다. 새로운 지배정책은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조선인에게 커다란 양보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핵심은 총독정치의 억압성을 일정 정도 무마하면서, 지배체제에 협조하는 친일세력을 양성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 곧 민족회유와 민족분열이 그 중심목표였다.

그리고 이런 지배정책의 변화에 따라 지방행정정책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하였다. 자문기관의 설치가 그것이었다. 일제는 1920년 지방제도 개정을 통해 부협의회, 면협의회, 도협의회, 그리고 학교협의회 등 자문기관을 설치하고, 일본인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지정면을 설정하였다. 경기도의 경우 수원군 수원면, 시흥군 영등포면, 개성군 송도면 등이 지정면으로 지정되었다. 일제는 자문기관을 설치하며 ‘지방자치에 대한 훈련’으로 선전하였지만 자문기관은 명칭 그대로 자문기관일 뿐 어떠한 의결능력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또한 지정면을 제외한 모든 보통면의 협의회원은 모두 군수가 임명했고, 지정면에 있어서도 선거권은 연 5원 이상의 납세자로 한정되었다. ‘조선인의 자치’와는 거리가 먼 친일세력의 제도적 흡수가 그 실제내용이었던 것이다.4)

이러한 지방지배정책은 1930년 부읍면제 실시되면서 다시 한번 바뀌었다. 1930년 개정된 지방제도는 지정면을 읍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이 다수를 차지한 도회, 부, 읍회에 의결권을 주는 것이 요점이었다. 그러나 조선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면협의회는 여전히 자문기능만 주어졌다.5) 1930년 지방제도 개정 당시 행정구역의 총수는 12도 14부 41읍 2,403면이었다. 면단위에서 바뀐 것은 군수가 임명하던 면협의회원이 선출직으로 바뀐 점뿐이었다. 그리고 그 선거조차도 면장이 선거를 대신할 수 있는 대서제(代書制)가 광범위하게 실시되어, 실제 조선인의 의사를 대변하는 인물이 선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6) 여주의 경우도 능서면, 대신면, 북내면, 강천면이 대서제 실시 면이었다. 요컨대 일제는 1910년 강점 이후 조선인의 자치질서를 해체하고 일제의 지배가 효율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새로운 질서체제로 지방제도를 계속해서 개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은 허울뿐인 자치기구에서 마저도 배제됨으로써 무권리, 피착취자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주시 역시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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