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역사 일제강점기의 사... 여주지역 식민지... 지방행정제도의 ...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지방행정제도의 변화와 여주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가 지배체제의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부분의 하나가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이었다. 대한제국으로부터 강제로 주권을 침탈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지방사회에 지배력이 침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을 합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체를 지배하는 데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했던 일제로서는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은 가장 시급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강점 초기 일제가 추진한 지방행정제도 개편의 큰 방향은 종래의 자치적 지역운영의 관행을 무력화시키고 이에 대신해 행정지배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먼저 일제는 이를 위해 1910년 칙령 357호로 ‘조선총독부 지방관관제’를 공포하여 지방제도의 대강을 확립하였다. 이 법은 지방제도의 골격을 규정한 기본법령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는데, 지방행정의 단위를 도, 부, 군, 면으로 하고 13도 12부 317군 4,408면으로 이루어지는 지방행정체계로 구획하는 것이 그 주요내용이었다. 또한 통감부 시기의 재무감독국의 업무를 도의 재무부로, 재무서의 업무를 도, 부, 군의 각 부서로 분장시킴으로써 행정체계를 일원화시키는 법제적 조치를 단행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였다.

일단 대강의 법제적 정비를 완료한 일제는 좀더 근본적인 행정제도의 정비과정에 돌입하였다. 1913년 1월의 각도 내무부장관회의에서의 총독의 지시 아래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1914년 3월과 4월에 일괄 실시된 행정제도의 개편이 그것이었다. 이때의 개편은 1910년의 그것이 주로 법제적 정비에 머물렀던 데 비해 행정구역의 실질적 개편을 꾀하는 것이었다. 구획의 지리적 불균등성과 세부담의 불균등성 문제의 해결 및 시정상의 편의, 경비절감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군 40방리 10만 명, 면 4방리 500호를 기준으로 일제히 통폐합조치를 시행했다.1) 이 통폐합의 결과는 일제의 지방통치에서 실로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동리 내에 포함되어 있던 자연촌락이 서로 다른 동리에 소속하게 되는 등 구동리의 구성상의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었고, 면에 있어서도 기존의 면내에 속해 있던 자연촌락이나 구동리가 서로 다른 면에 소속되는 등 면의 구성상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주 역시 이 개편을 통해 종래 16개 면이 10개 면으로 통폐합되면서 해방 후까지도 이어지는 행정구역이 확정되었다. 변동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