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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9월 유림 통문의 게시

1896년 의병이 명성황후와 관계되어 있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할 인물이 민용호1)이다. 유일한 여흥 민씨 의병장이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민용호는 의병을 일으키기 훨씬 전인 1895년 9월 16일 밤, 여주 청심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유림 통문을 게시하였다고 한다.

오늘 병사를 일으키려는 것은 또한 자위하려는 것이 아니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다. 대개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버지의 군사를 부리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며 대의이다. 만약에 아들이 어머니의 원수가 있으면 아버지의 명을 기다린 후 복수한다고 한다면 이것이 어찌 아들이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 것이겠는가? 지아비도 지어미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재주와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시세를 살피지 않은 까닭이다. 호연이 결속하여 동지와 더불어 약속하고 마음으로 복수를 맹세할 따름이며 삼가 여기에 게시한다.2)

통문의 요지는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주의 관군을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명성황후가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9월에 송근수와 신응조가 의병을 일으켜 원수 갚을 일을 모의한 것3)과 함께 명성황후 복수와 의병봉기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통의 게시장소를 여주읍의 중심부로 잡은 것은 아마도 이 지역에 민씨들이 살고 있어서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려는 데 목표를 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주목사는 이 유통으로 인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여 10여 일 후 목사직을 그만두고 돌아갔다고 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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