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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층에 대한 평가

서양인들이 조선사회 발전의 최대 장애로 지목한 것은 정치적 부정부패였다. 정치부패는 국가와 인민을 좀먹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산업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부패야말로 국가멸망의 원인으로 판단되었다.1) 한민족의 잠재력과 뛰어난 능력에 비해서 한국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정부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일반 대중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라고 보았다.2) 수탈과 횡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습관처럼 행해졌으며 모든 관직은 매매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단지 두 계급, 즉 수탈하는 사람들과 수탈당하는 사람들만 있다고 하여 한국 관료사회를 비판하였다.3)

그러면 왜 이 같은 부정부패가 확산되어 갔을까? 그 원인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은 명확하지 않다. 일단 당쟁과 세도정치 등 정치의 파행이 권력의 남용과 부정부패를 확산시킨 계기로 보았다. 권력 장악을 축재의 지름길로 인식한 데서 당쟁이 지속된 것으로 서양인들은 보고 있다.4)

특히 지방 관리들의 일반 백성에 대한 수탈이 심각하였는데, 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에 의해서 묵인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피스는 정부가 하는 가장 못된 일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과 백성을 희생하면서 몇몇 사람에게 특권을 허락해주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세금을 거두어들이면서 방백, 수령들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뜻대로 착취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중앙으로부터 요구된 것 이상으로 백성들을 쥐어짬으로써 자신의 이익까지 도모하고 있다.”5)고 고발하고 있다.

한국은 자원도 풍부하고 일반 대중들의 능력도 충분하지만, 지금의 이 상태에 이른 것은 지배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종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상은 공통적으로 온화하고 양순하다는 것이다. 비숍은 고종의 성품에 대해서 “왕의 표정은 온화하다. 그는 특별난 기억의 소유자로 한국 역사에 대해 썩 잘 알고 있어서 어떤 사건이나 구래(舊來)의 관습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 어느 시대 모월 모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정확하게 언급하면서 조목조목 설명해낼 수 있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고종은 심성이 착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종의 온화한 성품과는 별도로 고종의 통치능력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종은 의지가 굳지 못하여 추진력이 없고 주위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비숍의 글을 보면, “그는 어떤 일을 단단히 그러쥐고 밀어붙일 능력은 없다. 너무나 선하고 선진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감동적이다. 그가 좀더 강인한 성격과 의지를 가지고 무가치한 자들에게 그리 쉽게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면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성격의 박약함은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헐버트에 의하면 고종은 당초 독립협회를 동감하고 승인했으나 이내 독립협회에 등을 돌렸다고 한다. 이유는 독립협회가 전제군주권을 약화시키고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전면 탄압했다는 것이다.6) 서양인들이 보기에 고종의 일관된 관심은 실추된 군주권의 회복이었다. 고종은 독립협회를 강제 해체시켜 개혁운동을 좌절시킴으로써 국가와 고종 자신의 파멸을 초래한 것으로 비판했다.7)

결국 고종은 리더십 부족으로 진보적 사고를 국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그 반작용으로 군주권 회복에 집착한 나머지 진보적 개혁역량을 약화시키고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지도자로 서양인들에게 비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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