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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섭정과 사회정치 개혁

19세기 조선사회는 말기적 증상을 드러내었고, 사회모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1862년(철종 13) 임술농민항쟁으로 이어졌다. 농민층의 이 같은 움직임은 더 이상 그들의 성장이 봉건지배층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참고만 있을 수 없다는 성장된 의식의 표출이었다. 봉건정부로서도 이러한 농민층의 불만을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농민층의 동요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대외적으로도 위기에 직면하였는데 서구 열강의 침략이었다. 서구열강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19세기 중엽 이후 제국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값싼 원료지와 넓은 상품시장, 자본의 투하대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동북아시아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히 중국은 주목되는 대상지였다. 조선은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였지만 19세기 중엽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면서 이양선이 우리나라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 중국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태평양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추구하면서 조선도 개국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866년(고종 3) 7월 미국의 제너럴셔먼호가 열강 중 최초로 조선 침략을 도발하였다. 셔먼호는 대동강을 오르내리면서 조선 선박을 납치하여 식량과 물품을 약탈하였다. 셔먼호의 야만적 행위에 분격한 평양주민들은 평안감영의 군사와 합세하여 셔먼호를 불태우고 무장선원을 모두 살해하였다. 셔먼호의 침략은 비록 미국정부의 공식적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감행되었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반영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조선 정부가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도를 처형한 것을 빌미로 1866년 9월에 군대를 보내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한 후 조선 정부에 대해 프랑스 신부 살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 및 통상조약의 체결 등 침략적 요구를 제시하였다. 조선은 이를 거부하고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 주민을 살육하고, 각종 군수물자와 보물, 귀중한 문화재인 사고도서(史庫圖書)를 탈취해갔다.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청을 통해 이 사건의 책임자 처벌, 배상금 지급 및 통상조약의 체결을 요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청이 조선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자 1871년(고종 8) 4월 조선을 침략하였다. 조선 정부군과 의용군 부대는 용감히 맞서 싸워 강화도에서 미군을 격퇴하였다.

이와 같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때에 대원군이 등장하여 대내적으로는 왕권강화정치를,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치를 단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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