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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행정 및 부세체계의 변화에 대한 향촌민의 대응

왜란과 호란 후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정부가 채택한 군사·행정 및 부세체계의 개혁책은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재정수입도 증대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은 소농층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기득권층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승려에게 국가의 역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양민의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종전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된 향촌의 재지세력이나 승려 등은 정부의 재건책에 불만을 품고 대항하게 된다.

먼저 정부가 향촌의 재지세력이 은닉한 군역기피자를 색출하여 그들의 노비와 함께 속오군 등 군역에 편성하거나 대동법을 실시한 것 등은,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지주경영을 하였던 향촌 재지세력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였다. 이에 재지세력들은 국가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역기피자의 색출·군병의 선발·무기 등과 관련하여 잘못이 있으면 영장이 향소의 임원을 처벌하게 한 것을 계기로, 종래 자신들의 권력기구로서 군역 및 부세 업무를 주관하였던 향소를 기피하면서 국가의 정책에 대항하려 하였다. 아울러 토지를 많이 소유한 재지세력에게 불리한 대동법의 시행을 반대하였으며, 환곡이나 공부(貢賦)를 독촉하는 수령들에게 적극 대항하는 등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재지세력의 이러한 무단행위는 국가의 민에 대한 인신적 지배와 경제적 지배를 약화시켜, 재정수입의 감소나 군역담당자를 확보하는 것 등에 어려움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대표적 재지세력인 토호가 민결을 빼앗거나 민정을 은닉하는 경우 그들에 대한 처벌규정을 제정하거나1) 암행어사를 활용하는 등의 토호통제책을 시행하였다.2) 특히 영장제(營將制)를 활용하여 토호가 은닉한 군역기피자를 색출하여 토호의 사천과 함께 속오군 등에 편성시켜 통제하고, 재지세력의 권력기구인 향소(鄕所) 임원에 대한 처벌권을 영장에게 부여하고, 토호의 변란을 예방하기 위해 영장의 주둔지를 옮겨 그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토호가 참여한 변란을 진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3)

다음으로 17세기의 승역은 강화되어 종래 민호가 부담하던 요역을 대신하는 성격을 지녔는데,4) 승인은 산성수축역·산릉역·의승입역·조지서입역·백면지(白綿紙) 등은 물론이고 각 군영이나 관부의 침징 등도 받았다.5) 이에 승려들은 부담이 커진 승역을 피하기 위해 도망하였고, 사찰은 중앙 관부에 예속되거나 원당(願堂)이 됨으로써 지방에서의 수탈을 피하려 하였다.6) 아울러 지계하인(紙契下人)이 호조와 각 읍의 지원을 배경으로 값싼 지가(地價)를 주면서도 강압적인 선대제적(先貸制的) 지배를 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지물을 제공하지 않거나 지연 또는 지물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서 공인에게 대항하였다.7) 특히 1664년(현종 5)에는 관의 명령을 거역한 서천 천방사의 수승(首僧)을 체포하려 하였을 때, 천방사의 승인 수백 명이 조총과 활로 무장한 채 수승의 체포를 막고 절을 불태운 뒤 미움을 샀던 관인의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은 승역 강화에 대한 승인들의 불만을 잘 보여준다.8) 결국 이러한 승역 강화로 인하여 18세기 이후에 이르면 각지의 사찰은 피폐하게 되었는데, 정부는 의승 상번의 역을 1756년(영조 32) 번전대납제(番錢代納制)로 바꾸고 이듬해 산릉역을 마지막으로 국가적 대역(大役)에서의 승려의 징발을 그치는 조치를 취하였다.9)

한편 기효신서법의 도입으로 인한 군사·행정체계의 변동과 관련하여 향촌민은 물론이고, 수령과 문신 등의 반대도 있었다. 기효신서법의 도입에 따라 무기·편제·진법·기치(旗幟) 등에 변화가 야기되어 혼동이 초래되었다는 지적과 별도로 영장을 두어 조선전기 진관 수령이 행사하던 군사지휘권을 담당하게 한 것에 대한 비판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이에 정부는 기효신서법을 그대로 활용하되, 효종대 이후 대체로 삼남은 별도로 영장을 파견하고 그 외 지역은 수령이 영장을 겸임하게 함으로써 영장파견으로 인한 문무의 대립·경제적 부담 등을 해소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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