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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성리학적 윤리의 보급

조선국가의 국정교학(國定敎學)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였다. 다시 말해서 조선사회에서 성리학적 윤리의식을 사회적으로 구현한 인간상은 충효열을 구현한 인물이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성리학적 사회질서에 따른 윤리관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위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표창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이건 간에 해당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은 있기 마련인데, 조선시대의 경우 이와 같은 인물은 성리학적 가치질서에 부합되는 인간상이었다. 따라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편찬, 향교 등의 교육기관을 통한 풍속의 교화, 향약(鄕約)이나 계(契) 등을 통한 규제 등은 성리학적 가치체계를 사회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조선국가의 교화정책으로 표현되었다. 나아가 효열(孝烈) 인물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정려(旌閭)나 각종 세금의 면제 등에 해당하는 복호(復戶)나 부역의 감면 등은 그 구체적인 표창의 내역이었다.1) 여주 지역의 효열 관련 인물을 실록기사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2)

  • 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여주(驪州) 사람 민계점(閔繼點)은 효행(孝行)이 있으니, 재주에 따라서 녹용(錄用)하여 권장하라.” 하였다.
  • 여주(驪州) 사는 충찬위(忠贊衛) 남영희(南永禧)가 강에서 목욕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 깊은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아내 유씨(庾氏)가 비명에 간 남편을 슬퍼한 나머지 드디어 목매어 죽음으로써 남편의 뒤를 따랐다.
  • 여주(驪州)의 정병(正兵) 오세영(吳世英, 나이 10살 때에 그 아버지가 나쁜 병을 얻어 기절하자, 세영이 무명지를 잘라 피를 약에 타서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곧 나았다)은 복호(復戶)하였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 효자나, 열부(烈婦)는 어쩌면 조선사회에서 강조한 성리학적 가치질서 이전에 인간의 진정성을 구현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다만 조선사회에서 그것을 사회적 규범으로 장려하고, 포장(襃章)함으로써 사회적 통합기능을 추구한 조선국가의 지배정책과 부합되는 인간상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 어느 시대나 바람직한 인간상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시대마다 요구하는 인간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해당 인간의 진정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효를 사회나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의미로만 해석할 때, 해당 인간의 행위의 진정성은 이해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충(忠)의 본래 개념이 조금도 속임이나 꾸밈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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