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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도자생산과 중암리 백자 가마터

고려 미술은 신라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새로 송(宋) 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여 점차 고유한 발달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호화로운 귀족미술을 발전시켰다. 고려의 미술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인 것은 공예였다. 이 공예(工藝)는 흔히 목칠(木漆)·금속(金屬)·공예(工藝)의 세 분야로 구분하는데, 고려의 공예 중에 더욱 큰 발전을 이룬 것은 도자(陶瓷) 공예였다. 신라시대의 토기나 도기 단계를 넘어서서 이미 고려초기인 10세기 전반기에 자기를 생산하게 되면서 그 단서를 열게 되었다. 고려시대 도자기의 중심은 청자이지만, 이 시대에도 백자가 제작되어 고려인의 도자 공예에 대한 우수한 예술감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초기 도자기 가마 가운데 청자를 구운 곳으로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大口面) 일대가 유명하고, 백자 가마터로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二東面) 서리(西里) 일대가 유명하거니와, 최근 여주 중암리 일대에서 백자 가마터가 발굴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1)

고려백자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고려자기의 관심 자체가 고려청자에 편중되었고,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백자의 유물 수량 자체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자연히 청자와 같이 활발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형편이다. 1960년대 용인시 이동면 서리에서 백자 가마터가 발굴되면서부터 고려초기의 백자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후 백자는 미륵사지, 성주사지, 거돈사지 등지에서 백자 완이 출토되었으나, 이들 유적은 소비 유적으로 고려백자에 관한 단편적인 자료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최근에 시흥 방산동 가마터에서 고려백자가 발견되었지만 이 곳에서는 주로 청자를 생산하였고 일부 백자가 생산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 여주 중암리에서 발견된 가마터는 용인 서리 가마터에 이어 고려백자 연구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려백자는 청자에 비해 그 생산량이 적지만, 제작기법이나 기형, 무늬 등 그 특징이 모두 청자와 같고 다만 재료만 다르기 때문에 청자의 발전과 완전히 그 궤를 같이한다. 이제 여주 중암리 백자 가마터의 발굴·연구성과를 중심으로 하여 고려 백자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중암리 가마터는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여주지역 가마터 지표조사 과정에서 해무리굽 완과 화형접시, 갑발 등이 수습되면서 고려초기의 가마터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보다 먼저 1932년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여주자기시험(驪州磁器試驗)이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조사나 연구가 없었다.3) 그러다가 최근 경기도박물관에서 2001년 7월~10월과 2002년 11월~2003년 2월에 걸쳐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여주지역 도자사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 기초조사 및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주 중암리 유적은 고려백자를 생산한 요지로 고려초기의 백자의 발생 및 발달과정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도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1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가마의 규모와 구조가 파악되었으며 출토 유물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초기 고려 백자에 대한 학술적 자료가 제공된 바 있다. 아울러 유적 주변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해 여주 일대에 30여 기의 도요지가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중암리 산 142-1, 답 529-4, 533-1 일대로 우측으로 낮은 구릉 경사면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5°이상의 구릉지이며 그 중 산지가 60%를 넘는다. 또 인근 현암리에는 고령토 광산이 있으며, 중암리 주변에도 백자를 생산하기 위한 질 좋은 백토(물토) 원산지가 분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적의 입지는 주변에 가마의 화력을 공급할 수 있는 땔감과 작업에 필요한 수원이 풍부하며 또한 협곡과 하전을 이용한 교통로가 발달하여 자기의 재료 및 완성된 자기의 이동과 공급이 용이하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연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도요지가 발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중암리 인근 지역의 불교유적으로는 상교리에 고달사지(사적 제382호)와 천송리에 신륵사가 있으며, 남한강과 지류 하천로를 따라 점동면에 원향사지가 있고 원주 부론면에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등 대형 사찰터 등이 남아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 크게 번성한 불교유적으로 중암리 백자요지와의 수급관계를 상정해볼 수 있다.

1·2차에 걸친 발굴결과 중암리 가마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잘 남아 있어 고려시대 백자 가마의 전체적인 형태를 짐작케 해준다. 가마의 특징은 중부지역 가장 내륙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그 구조가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은 해무리굽 완, 발, 접시, 잔 병, 대반 등 모두 11종류로 분류되며, 요도구로는 갓모, 봇극, 도지미, 갑발이 수습되었고 그 밖에 벼루편과 어망추가 수습되었다. 중암리 백자 가마터의 백자 제작시기는 대체로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까지로 추정된다.

한편 여주 일대 도요지 지표조사 결과 84개소의 도요지가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4) 그리고 도요지 유적의 종류 및 운영시기는 고려청자·고려백자·분청사기·조선백자·옹기가마터 등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시기에 걸쳐 조성되었음도 확인되었다.

여주 일대에서 조사 확인된 도요지를 읍·면별로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이 표를 통해 확인된 도요지의 지역별 분포현황을 보면, 강천면에는 도전리 18기, 부평리 9기, 가야리 4기 등이 있으며, 북내면에는 중암리 17기, 운촌리 4기, 장암리 4기, 상교리 15기, 석우리 2기, 외룡리, 오금동, 오학동, 천송동에서 각 1기씩이 조사되었다. 점동면 현수리, 산북면 상품리, 능서면 번도리에서 각 1기가 확인되었으며, 가남읍에서는 삼군리, 안금리, 신해리, 본두리, 각 1기씩 총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90% 이상이 동북부 산간지대인 강천면과 북내면, 오학동에 밀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여주지역은 여러 가지 자연지리적 이점으로 인하여 고려시대 도자생산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여주시 도요지 읍·면별 현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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