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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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개편과 황효현·기천군의 성립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넓어진 영토를 9주로 개편하여 통치하였다. 옛 신라 경계 안에 상주(尙州)·양주(良州)·강주(康州)를 설치하고, 옛 백제 지역에 웅주(熊州)·전주(全州)·무주(武州), 옛 고구려 지역에 한주(漢州)·삭주(朔州)·명주(溟州)를 각각 설치하였다. 여주지역은 한주에 해당한다.

여주지역은 삼국의 정립 이후 백제에 편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5세기 후반 고구려의 남하와 함께 고구려에 편입되어 골내근현이라 불리었다. 6세기 중엽 신라가 이 지역을 영유하고 신주를 설치하여 한강 유역을 관할하였는데, 여주지역은 한주의 기천군(沂川郡)에 속한 황효현(黃驍縣)이 되었다.1)

신라의 군사조직은 통일전쟁과 대당투쟁기를 거치면서 6정(停) 체제로 정비되었다. 544년(진흥왕 5) 대당(大幢)이 설치되면서, 영토확장과 함께 지방에 순차적으로 설치되었다. 상주정(上州停, 552 : 貴幢 ; 尙州)·한산정(漢山停, 604 : 新州停, 553·南川停, 568 ; 利川)2)·우수정(牛首停, 673 : 比列忽停, 556 ; 春川)·하서정(河西停, 658 : 悉直停, 505 ; 江陵)·완산정(完山停, 685 : 下州停, 555)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685년 완산정의 개칭과 함께 완성되었다.

통일 이후 신라의 군사조직은 다시 중앙군인 9서당(誓幢)과 지방군인 10정 체제로 개편된 다. 9서당은 왕도에 설치되어 왕에 직속된 것으로 보이는데, 녹금(綠衿)서당·자금(紫衿)서당·백금(白衿)서당·비금(緋衿)서당·황금(黃衿)서당·흑금(黑衿)서당·벽금(碧衿)서당·적금(赤衿)서당·청금(靑衿)서당으로 나뉘었다. 9서당은 금색(衿色)에 의해 구별되었는데, 이러한 획일성은 통일 이전의 귀족적 전통을 극복하고 국왕에 직속된 부대로서 왕권의 핵심적인 군사조직이었다. 또한 고구려·백제·보덕국(報德國)·말갈 등 통일 이후 유민을 화합하기 위한 부대로 볼 수 있다.

지방에 배치된 10정은 지명이 더해져 주둔지의 명칭을 알 수 있는데, 9주에 각 하나씩, 국방상 중요성이 높은 한주(漢州)에만 2개의 정을 설치하였다. 10정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 음리화정(音里火停) : 경북 상주시 청리면(靑里面) : 상주(尙州)
  • 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 : 충남 청양군 청양읍(靑陽邑) : 웅주(熊州)
  • 거사물정(居斯勿停) : 전북 임실군(任實郡) 지사면 : 전주(全州)
  • 삼량화정(三良火停) : 대구시 달성군(達城郡) 현풍면(玄風面) : 양주(良州)
  • 소삼정(召三停) : 경남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 강주(康州)
  •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 : 전남 나주시(羅州市) 남평면(南平面) : 무주(武州)
  • 남천정(南川停) : 경기 이천시(利川市) : 한주(漢州)
  • 골내근정(骨乃斤停) : 경기 여주시 여주읍(驪州邑) : 한주(漢州)
  • 벌력천정(伐力川停) : 강원 홍천군 홍천읍(洪川邑) : 삭주(朔州)
  • 이화혜정(伊火兮停) : 경북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 명주(溟州)

위에서 보듯이 여주지역에는 골내근정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주읍에 설치된 골내근정을 포함하여 10정에 배속된 군관은 대대감(隊大監)-소감(少監)-화척(火尺) 계열과 삼천당주(三千幢主)-삼천감(三千監)-삼천졸(三千卒) 계열로 이루어졌다. 대대감에서 화척에 이르는 군관은 모두 기병(騎兵)을 거느리는 군관으로 기병 중심의 부대라 할 수 있고, 삼천당주에서 삼천졸에 이르는 군관은 보병부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백제 멸망 직후 고구려와 말갈의 술천성 침입에서 보이듯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이 우려되는 여주지역은 남천정과 함께 한주(漢州)와 금성을 잇는 남북 교통의 요충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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