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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의 각축과 골내근현·술천군의 동향

삼국의 항쟁은 4세기 이후 격화되어 5~6세기에는 한강 유역을 놓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여주지역은 삼국 쟁탈의 주요 대상인 한강 유역에 인근했기 때문에 삼국의 주도권 변천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겪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4~6세기 동안 37회에 이르는 교전이 있음이 확인된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기사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 39년에 보인다. 그 이전 고구려는 주로 북방 민족 또는 한군현과, 백제는 말갈이나 낙랑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한군현 세력인 대방·낙랑이 소멸된 이후 두 국가간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빚어지게 되었다. 5세기 중후반 고구려의 남하에 따라 여주지역은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신라는 6세기에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백제의 점령지마저 획득한 후 통일기까지 대고구려·백제 전쟁과 대중국 외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확대된 영역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 편제를 신속히 마무리하였고, 활발한 대중국 외교를 통해 삼국 항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게 되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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