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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장시의 변천

여주의 정기시 분포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순조 27년(1827)경에 경제문제를 다룬『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예규지(倪圭志)」에 의하면 여주읍에는 주내장(州內場), 억억장(億億場), 곡수장(曲水場), 신은천장(神恩川場), 궁리장(宮里場)의 5개 정기시가 입지하였다. 주내 정기시(2·7)는 관문 앞에 위치하였고, 억억 정기시(1·6)는 여주 서쪽 24리의 길천면에 위치하였으며, 곡수(曲水) 정기시(4·9)는 여주 북쪽 30리의 대송면에 위치하였다. 신은천 정기시(5·10)는 여주 북쪽 50리의 개군산면에 위치하였고, 궁리 정기시(3·8)는 여주 서쪽 30리의 금사면에 각각 위치하였다.

그 뒤 조선 고종 때 발간된 『증보문헌비고』「시적고(市糴考)」에 의하면 여주읍에는 읍내 정기시(2·7), 청안리 정기시1)(1·6), 억억교 정기시(1·6), 대휴(大畦) 정기시2)(4·9), 곡수 정기시(4·9)의 5개가 개시되었다.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조선의 시장경제(朝鮮の市場經濟)』에 의하면 읍내시, 대평리시, 이포시로 3개의 정기시가 입지하여 그동안 이 지역에 인구와 경제수준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38년에는 대평리시가 태평리시로 그 명칭이 바뀌었고, 1955년에는 정기시가 6개로 1938년에 비해 흥천면에 입지한 흥천 정기시, 북내면의 주암(注岩)·당우(堂隅) 정기시가 증설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의 정기시가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여 거의 모든 면사무소 소재지 수준 정도의 중심지에 일제히 개설되어 1965년에는 8개가, 1976년에는 5개의 정기시가 개시되었으나 최근 자동차 교통이 발달되고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많이 전출되면서 소규모의 중심지가 크게 쇠퇴되어 폐시가 많아져 1986년 이후 현재까지 여주·가남·대신 정기시 3개가 개시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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