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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철도 교통

철도교통은 제일 먼저 수려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수려선은 1920년 3월 3일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수원에서 여주까지 73.4㎞ 구간의 건설면허를 얻어 1930년 12월 1일 수원-이천 사이의 53.1㎞를, 그 1년 후인 1931년 12월 1일에는 이천-여주 사이의 20.3㎞를 개통시켰다. 이 철도는 다가와 조이치로(田川常一郞)에 의해 당초의 자본금은 300만 엔, 차입금은 130만 엔이 투자되었다. 그러나 철도건설에 따른 자금부족으로 표준궤의 규격으로 면허를 받았으나 765㎜의 협궤노선을 건설하게 되었다. 1937년 8월 6일에는 인천항(현재의 남인천)까지 52.0㎞를 영업하였고, 1935년 7월 5일 여주에서 물산 집산지의 기능을 갖고 있는 점동면 홍호리 대안까지 16.0㎞의 노선연장의 면허를 받았지만 태평양전쟁의 격화로 무산되었다. 여주까지의 철도부설은 여주가 한강의 주요 하항으로 1931년부터 이 지역의 미곡과 강원·충북지방의 농산물과 임산자원을 수원으로 수송하기 위함이었다. 1942년 조선철도주식회사에 합병되어 경동선(京東線)이라 부르다가 1946년 국유화되어 수원-여주 사이를 수려선이라 불렀다.

그 후 1960년대 이후 자동차교통의 여객시장 잠식과 1942년에 중앙선, 1971년에 영동고속국도가 개통됨으로써 영서지방의 물자와 여객수송의 기능은 사라지고 경기도 일부 지역의 여객과 화물만을 수송하므로 1972년 3월 31일에 폐선이 되었다. 수려선은 용인, 이천, 여주, 그리고 강원도 영서지방 남부를 세력권으로 내륙수로 교통을 대체하는 지역간선 교통기관으로 기능하였으며, 동시에 수인선을 매개로 인천과 최단거리로 연결되므로 식민지형 경제수탈 노선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수려선의 노선은 부발읍 무촌리에서 42호선 국도의 남쪽으로 죽아리-용운리-매류리-연라리를 거쳐 읍내로 들어갔고, 종점은 지금의 홍문동이었다. 철거된 궤도는 지금 도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류리의 역촌마을이나 매류철교는 수려선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려선 폐선 이후 여주에는 철도가 분포하지 않는데 국도 42호선과 영동고속국도의 상습적인 교통정체를 해소하고 수도권의 다핵다권역의 공간구조 개편 및 수도권 남동부의 지역발전을 위해 2010년까지 53.8㎞의 성남~여주 간 도시철도 여주선이 확정되어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어 서울과의 시간거리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노선을 보면 판교(신분당)-이매(분당)-삼동-광주-쌍동-곤지암-신둔-이천-부발-능서-여주를 각 역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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