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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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역로와 고개

18세기 경안도(慶安道)에 입지한 여주목의 역은 양화(楊花), 신진(新津), 안평(安坪)이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양화역1)은 여주읍에서 서쪽 15리에 위치하였다. 이는 한강하류 쪽으로 지금의 여주시 흥천면 귀백리 양화나루이고, 신진역과 안평역은 여주읍에서 충주목으로 가는 도로상에 위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신진역2)은 여주읍에서 동쪽으로 5리에 위치하였으며 지금의 여주시 신진동에 해당되고, 안평역3)은 여주읍에서 남쪽으로 30리에 위치하였으며 지금의 점동면 청안리에 해당된다. 이들 역들은 경안역에 소속되었으며 인적 구성으로 보아서는 신진역이, 토지소유로 보아서는 양화역이 가장 계층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 상에는 여주읍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지평(砥平), 동서 방향으로는 이천과 원주를 연결짓는 두 개의 도로가, 남동쪽으로는 음죽, 남서쪽으로는 충주와 연결되는 도로가 분포하였다. 그리고 여주읍을 통과하는 도로로 『대동지지』 「정리고(程里考)」에 기재된 10대로 중 봉화로(奉化路) 본선, 즉 동남지봉화오대로(東南至奉化五大路) 본선과 본선에서 분기하는 1차 지선, 1차 지선에서 분기하는 2차 지선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도(京都) → 전곶교(箭串橋)(10) → 신천진(新川津)(10) → … (중략) … → 경안역(慶安驛)(15) → 쌍령점(雙嶺店)(10) → 곤지애(昆池厓)(10) → 광현(廣峴)(15) → <이천(利川)>[20, 경일백삼십리(京一百三十里), 분기(分岐)] → 장등점(長磴店)[30, 자광현불입이천직지장등점사십오리(自廣峴不入利川直至長磴店四十五里)] → <음죽(陰竹)> … (중략) … → <봉화(奉化)>

이천(利川) → 대교천(大橋川)(20) → <여주(驪州)>[20. 경일백칠십리, 동원주구십리, 남음성팔십리(京日百七十里, 東原州九十里, 南陰城八十里)]

이천에서 여주까지의 도로는 42번 국도로 연결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 도로는 경기도 남부에서 남한강 상류의 강원도를 잇는 주요한 기능을 하였다. 이천~여주~원주~강릉을 잇는 이천~강릉간 2등 도로는 일찍이 1912년에 기공하여 1918년에 완공하였다. 1931년에는 협궤로 수려선(수원~여주)이 이 도로 남쪽에 나란히 건설되었고, 1937년에는 수인선과 연결되면서 이 일대의 미곡 반출을 가속화시켰다. 이천읍 관고리와 여주시 홍문동에 각각 치소(治所)가 있었으며, 대교천은 양화천의 별명인 듯하다.

대동여지도상에서 여주목에 분포한 고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여주에서 지평 사이에 여주에서 약 35리(10리는 5.1㎞) 지점에 지경치(地境峙)가, 지평과 원주 사이의 여주목 경계에 전양현(前楊峴), 서화치(西化峙)가, 여주와 음죽 사이에는 여주에서 약 22리에 박석현(朴石峴)이, 양근과 이천 사이의 여주목 관할지역에 양근에서 약 20리 지점의 노마현(老馬峴)이 분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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