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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단강

단강의 애칭은 단암과 자산에서 유래한 것인데 자산의 위치는 섬강과 달천이 만나서 강천리로 향하는 합류 지점에 있는 곳으로 산이 작지만 험준하고 산 아래 합류하는 곳이 물이 깊어서 경관이 아주 수려하다.

이곳 사람들이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산 그림자가 잠겨 있는 물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도복숭아가 빨갛게 달린 나무들이 산 가득하여 붉은 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 복숭아는 이 산에 살고 있는 신선이 양식으로 하기 위해 심어둔 것인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질 않고 물속에서만 그림자로 나타나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복숭아를 따서 먹기만 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욕심을 내다가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미루어 볼진대 경관이 수려하니 신선이 살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석북의 시 속에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도화수(桃花水)로 올라가다”, “도화수가 불어나다”, “빨리 봄이 되면 도화수에 놀고 싶다” 등 복사꽃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옛 사람들의 말에 신선이 사는 곳에는 좋은 약을 항상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불그스름한 구름 같은 연기가 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선이 사는 곳은 자운동천(紫雲洞天), 단산(丹山), 단구(丹丘)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산을 신성시하여 자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단강이란 이름도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이다.

충주시 앙성면 단암(옷바위)리가 있다. 그곳 사람을 만나 “왜 단암이냐”고 물었더니 저 앞에 있는 작은 산을 공양왕산이라 부르는데 공양왕이 피난을 가고 있는 중에 추격이 급하자 붉은 옷을 입은 신하가 옷을 벗어 바위에 걸어두고 위장을 하였기 때문에 추격을 따돌리고 급함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여 그 후로 옷바위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 단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부론면 단강리가 있다. 그곳 노인들을 만나 “왜 단강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단종께서 영월로 가실 때 이곳에 쉬어 가시며 저기서 물을 마셨다 하여 단정(端井)이라 하였는데 마을이 통폐합되면서 단정의 단자와 강촌의 강자를 합하여 단강이 되었지만 단(端)자가 단(丹)자로 변하여 단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단암리가 단강의 시발이 될 수도 있지만 자산과 마주하고 있어서 거기가 거기이고 또 단암은 충북의 땅이지만 자산은 우리 여주의 땅이고 보면 단강의 시발을 자산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튼 자산에서 이호리까지를 단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민진원이 우만리(현재 여주시 우만동) 출신인데 호를 단암으로 하였고,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시 중에 「강천을 지나 여주로 가다」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상류로 올라가니 한 도시가 있는데
上流一都會
두 강 사이에 천 실은 됨 직하네
千室兩江間
큰 골짜기는 정기를 모아 두었고
大壑函元氣
중류에는 잘려진 듯한 산이 있네
中流有斷山
밝은 노을은 학수(鶴峀)에 떠 있고
晴霞浮鶴峀
병풍 같은 돌은 우만을 감싸고 있네
奇石抱牛巒
문득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便欲携家入
풍선 가득 봄바람 안고 돌아오네
春風掛帆還

이 시의 초구는 원주의 부론을 말함이요, 다음 구는 자산을 칭함이요, 셋째 구는 이호와 강천 사이의 돌산이 우만을 감싸안고 있다는 것이니, 여기서 단강의 시발과 끝을 추상할 수 있다.

그리고 단강을 노래한 시들이 수없이 많지만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가 단연 으뜸이다. 이것은 뒤편에 소개한다.

석북은 영조 때의 시·서·화로 유명한 풍류객인데 영릉 참봉으로 제수되어 와서 3년이란 임기 동안 오갑산의 고승 법정(法正)와 시주(詩酒)의 벗이 되어 단강을 무대로 자주 선유(船遊)를 즐기며 노래한 시만도 수십 편이다.

석북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 뒤에 법정이 그 시들을 책으로 묶어 『여강록』이라 이름하고 서문을 지었다. 그 서문에 이르기를 “선배님들이 여강에 노시던 풍류 또한 대단하였지만 그 분들은 거의가 혼자서 풍광을 노래하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기가 만나 3년 동안 서로 주고 받았다.”라고 긴 세월을 여강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하나도 빠짐없이 노래한 것은 전무후무할 것이라 하였다. 석북의 지나친 자부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말이 사실인 것이다.

석북이 부임하여 오면서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황려로 가는 도중에 법정을 생각하며(黃驪途中憶法正有吟)
임명장을 받고 낚시를 거두었는데
除紙滄浪罷釣忙
오십 서생이 처음으로 제랑이 되다니
書生五十始爲郞
서울 동쪽 눈바람에 청포는 짧고
京東雪野靑袍短
물 위의 영릉에는 자기가 길구나
水上寧陵紫氣長
늘그막에 벼슬은 병에도 좋지 못한데
垂老仕還妨疾病
그동안 문장이란 이름이 부끄럽기만 하구려
向來名己愧文章
이번 길에 가장 기쁜 것은
此行祗喜原州近
법정과 서로 만나 만사를 잊어볼까 한다네
法正相看萬事忘

이 시를 보아 법정과는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가 분명하다. 하기는 법정도 시로 유명한 당대의 고승이니까.

다른 선인들의 시제에는 단강을 노래한 것들이 별로 많지 않은 반면 석북은 단강을 노래한 시제가 아주 많다. 그 이유는 법정과 만날 수 있는 약속 장소가 주로 단포이기 때문이다. “단암의 주중에서”, “단포로 향하다”, “단포에서 법정과 약속했는데 오지 않다”, “돌아오면서 섬강을 돌아보다” 등등 이밖에도 수 없이 많다.

그럼 법정과 주고받은 시 몇 수를 옮겨 보기로 한다.

법정을 보내고 관사에 돌아와 생각한다
소를 타고 온 법정이여
騎牛丁法正
하루만 자고 충주로 가버렸네
一宿向忠州
수목이 많은 속에서 이별했는데
萬木深中別
홀로 등불 앞에서 시름 하네
孤燈見始愁
언제나 꽃이 피고 풀이 피면서
何時化滿樹
얼음 풀어지고 배가 다니게 되면
倒處水通舟
벽절과 청심루에서
壁寺淸樓興
그대와 같이 한 열흘 놀고 싶다네
携君十日遊

이 시에서 두 사람의 사이를 짐작할 만하다. 이 두 사람은 잠시라도 보지 못하면 몸살이 나서 살맛이 없을 정도의 지기 중의 지기라 말할 수 있다. 강이 얼어서 배가 다닐 수 없자 소를 타고 찾아오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은 하루빨리 얼음이 풀어져서 배를 타고 오기가 수월하기를 바라며 하루빨리 둘이 만나 시 짓고, 술 마시며 한 열흘 즐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법정의 화답하는 시를 보자.

오갑산 정상에 누워
六鰲峰頂宿
아득히 여주를 바라보네
杳杳望驪州
단강에서 이별한 것이
一自臨江別
한 달이나 된 것처럼 시름하네
飜成見月愁
구름은 들판을 가로질러 건너가고
白雲生野渡
봄눈도 고깃배에 실려 오가는구나
春雪載漁舟
생각해보니 당신 책상 위에는
遙億淸齋興
지어둔 시들이 가득하겠지
題詩滿上遊

법정 역시 며칠 전에 만나서 자고 온 모양인데 한 달이나 못 만난 연인처럼 몸살이 나서 구름은 아무 구애도 없이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봄눈도 고기잡이배에 공짜로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부러워 죽겠다는 그 풍류들이야 말로 단강의 흥취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 두었다 할 만하다.

「섬강에서 법정을 만나 같이 배를 타고 신륵사로 내려오다」의 시제로 주고받은 것들이 많은데 그중 한 수를 소개해 본다.

섬강에 돛 높이 달고
蟾江浮夜榜
멀리서 온 친구 싣고 오네
遠載故人歸
벽절에 오니 처음 종이 울고
到寺初動鍾
누에 오르니 비는 그치려 하네
登樓雨欲稀
늙어 갈수록 호해1)의 뜻을 거두고
老將湖海志
봄이 오면 같이 벽나의2)를 입세나
春共薜蘿衣
낚싯대나 하나 구하여 가지고
行買一芉竹
동대에 앉아서 낚시나 했으면
東臺上釣磯

법정이 화답하는 시

시야에 가득한 서강의 물에
滿眼西江水
당신이 아니면 누구와 같이 왔겠소
微君誰與歸
배 올겨 흐르니 산은 멀어저만 가고
移船山漠漠
절에 도착하니 비 부슬부슬 오네
入寺雨霏霏
이 땅에 우리들이 늙어가면
海內吾曺老
등잔 앞에 이 같은 모임도 드물겠지
燈前此會稀
나루에 임하여 소리 높이 노래하니
放歌臨極浦
봄풀이 누더기 옷을 비추고 있네
春草暎蓑衣

신륵사에서 놀기를 약속하고 배를 가지고 단포까지 가서 법정을 만나 같이 오고 있다. 이 주고받은 시에서도 두 사람은 하늘이 주신 맞수라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

“석북의 시에 벽절에 오니 처음 종이 울고”는 밤중임을 알 수 있고 “누에 오르니 비는 걷히려 하다”에는 새벽이 다가온다는 의미를 암시한 것이다.

밤을 지새우며 놀고서도 모자라서 벼슬이고 명예고 잡다한 것들은 모두 걷어치우고 봄옷을 같이 입고 동대에서 낚시나 하면서 같이 있기를 원하고 있고 법정도 이 땅에 우리가 없어지면 이 같은 자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으니 아마도 두 사람 사이는 죽고 못 사는 20대 연인들보다 한층 더 간절한 것 같다.

두 사람이 남긴 걸작은 수없이 많지만 단포에서 애타게 기다리다가 혹은 만나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기도 하고 혹은 법정이 오지 않아서 못내 아쉬워하며 쓸쓸히 돌아오는 두 편을 골라 보았다.

「법정을 단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기에 관부를 대동하고 눈길을 뚫고 가다」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누렁이 소와 누렁이 말을 타고 온 것은
黃牛黃馬兩翁騎
산음3)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요
爲有山陰昨夜期
십리 단암에 눈을 밟고 온 이 풍류는
十里丹巖江上雪
옛사람 풍류집에 올려도 무방하리
此行應入古人詩

소타고 말타고 눈길을 달려와 만나는 이러한 풍류는 옛 사람들이 모아둔 풍류집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다.

법정과 약속을 했는데 오지 아니하다
그대와 만나기로 단포로 약속했기에
與君期丹浦
눈을 뚫고 단포까지 달려 왔는데
雪中丹浦來
단포에 와도 그대가 보이질 않아서
丹浦不見君
저무는 강으로 쓸쓸히 돌아가고 있다네
日暮江上回

법정이 오기를 고대하다가 오지 못하자 만나고 싶은 심정을 시에 담아두고 저물어가는 강으로 쓸쓸히 배를 타고 가는 그 모습과 그 심정이 지금도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단강을 노래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만도 한도 끝도 없지만 이계 홍양호의 「우만으로부터 벽절을 향하면서」 에는

강물이 여강에 이르니 넓어지고
江到黃驪大
하늘은 강과 연하여 평평하네
天連白水平
마암에는 봄 풀이 푸르고
馬巖春草色
신륵사에는 저녁 종소리 한가하네
神勒暮鍾聲
닻을 매어두고 중과 서로 말하면서
繫纜僧相問
뱃전을 울려도 고기는 놀라지 않네
鳴榔魚不驚
동대에서 술잔을 기울이는데
東臺一把酒
백가지 꽃들이 눈에 하나 가득하네
滿眼百花明

이계는 영조조의 문신으로 문무를 겸전하였으며 지식이 아주 해박하였다. 『국조보감(國朝寶鑑)』과 『갱장록(羹墻錄)』 등을 수찬하였으며, 『만물원시(萬物原始)』, 『육서경위(六書經緯)』, 『격물해(格物解)』, 『목민대방(牧民大方)』, 『동해명장록(東海名將錄)』, 『삭방습유(朔方拾遺)』, 『북색풍토기(北塞風土記)』 등 이외에도 많은 저서들이 전하고 있다. 특히 시와 서예에는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이 있다.

이계의 두 편 시에서 단강을 시작에서 마무리까지로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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