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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산과 강과 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하기 때문에 목은(牧隱) 이색은 이렇게 읊었다.

여강의 굽이굽이 산이 그림 같아서
驪江一曲山如畵
반은 단청 같고 반은 시와 같네
伴似丹靑半似詩

이처럼 자연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풍류객들이 중국의 서호와 같다 하였고, 혹은 평양의 대동강과 같다 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강의 평양, 소양강의 춘천, 여강의 여주를 우리나라의 삼대 강촌으로 꼽았다.

거기에다 강원도의 산에서 나오는 목재 및 약재와 중부 지방의 농산물 및 세공(歲貢)과 서해의 해산물들이 물길을 따라 수없이 모여드는 무역의 요충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여서 포구마다 객주들이 즐비하였고, 객주마다 임지로 왔다가 가는 벼슬아치들, 풍류를 좋아하는 시인 묵객들, 여행객에 장사꾼에 건달 잡배까지 쉴 사이 없이 오가며 흥청거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강을 한국의 양자강이라 하였다.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강원도 산속에 쌓인 낙엽 썩은 흙이 장마에 씻겨 와서 들판을 충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농지가 비옥하기로 유명하여 여주쌀 하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알아주는가 하면 지리적인 조건으로 풍수해와 기근이 없는 살기 좋은 낙지(樂地)라 칭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였듯이 자고로 이 고장은 큰 인물들을 많이도 배출한 곳이다. 왕비만도 아홉 분이요, 정승이 20여 인이고, 판서 이하는 부지기수이고 보면 가히 짐작할 수 있거니와 서울이 하룻길이고 보니 많은 명유들이 혹은 유배로 혹은 탐승으로 혹은 우거하여 와서 운수풍광(雲水風光)을 노래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러 사대부(士大夫)의 기북(驥北)1)이라 하였다.

많은 선현들의 시제(詩題) 속에 여강이 등장하는데, 여강은 원주의 섬강이 충주의 달천과 만나는 자산(紫山)의 근처에서부터 시작하여 금당천, 양화천, 곡수천, 복하천, 품실천 등을 받아 안은 채 유유히 흘러 금사면 전북리의 앞까지를 이름이다.

한편, 상단(上端)을 단강(丹江), 중간을 여강(驪江), 하류를 기류(沂流)로 부르고 있었지만 총칭하여 여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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