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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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남한강 중류 미작농업의 중심지

조선후기 남한강 유역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쌀이었다. 특히 조생종 벼를 재배하여 일찍 시장에 출하하기 때문에 이 지역 농민의 주 생산품이 되어왔다. 여주지역이 쌀 생산지로 이름이 나 있었음은 “광주 이천 자채 방아”라고 하는 민요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여주·이천의 ‘자채쌀’은 수운이 발달했던 조선 시대에 남한강 하운을 통해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윤기와 맛이 뛰어나 국내에서 최고의 품질로 쳤다. 여주시 중앙부를 관통하는 남한강은 길이가 약 390km로 영서 산지에서 발원하여 충북 동부와 경기 동부지방을 흐르는 한강 중·상류의 큰 물줄기로서, 이 수로는 근대 교통기관의 도입 이전까지 중부 지방의 대동맥 구실을 하여 왔다. 남한강은 중부 내륙과 한양을 연결하는 수송로이며, 동시에 조선 시대의 자원과 인재의 보고였던 영남지방과도 연결되는 교통로의 주축이었다. 특히 고려와 조선조 1,000년간 남한강은 전국 제일의 조운로(漕運路)로서 왕조의 정치·경제적 통합에 기여한 바 크다. 여주에는 3개의 수조처(收漕處)가 있었는데 경창직납지(京倉直納地)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하천의 본류에 접한 곳에는 수로교통이 편리한 관계로 상업 기능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어 상업 취락이 발달하였으며, 세곡선(稅穀船)과 상선(商船)이 붐비는 상업 중심지들이 있었고, 이포가 있었던 지역에는 사상(私商)과 조운업자(漕運業者)가 성장하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남아 있던 나루터가 11개 이상이었으며 육로교통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남한강의 수운은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와 도로가 건설됨으로써 쇠퇴하기 시작하여 팔당댐이 완공되던 1974년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31년 일인에 의해 개통된 수려선은 여주지역의 미곡과 강원·충청 지방의 산물을 여주로 집적시켜 수원으로 수송하였다. 1937년에는 수인선(水仁線)의 개통으로 여주-수원-인천이 철도로 연결되었으며, 중부 내륙의 농산물은 인천까지 직송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수려선은 해방 후 국유로 귀속되었다가 일반 육로의 발달로 이용이 줄어들면서 1972년에는 폐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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